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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1

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



글쎄, 웨스 앤더슨이 <문라이즈 킹덤>으로 그려내려고 했던 세상이 '진짜' 아이들의 세상이었을까? '샘(자레드 길만 분)'과 '수지(카라 헤이워드 분)'는 각각 나고 자란 환경,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아이의 힘으로는 바꿀 수도 없는 그런 어른의 세상에서 어른들의 논리로 자라난다. 교회에서 하는 연극을 보러 온 샘과 까마귀로 출연하는 수지는 첫눈에 서로에게 묘한 끌림을 경험하고, 편지를 통해 가까워지며 '연인' 관계가 된다. 둘만의 공간을 찾기 위해 가출한 둘은, 어른들의 세상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왕국으로 떠난다. 이 '가출'이라는 행위 자체는 어린 아이라는 한계적 상황을 만들어낸 어른들로부터의 일탈로, 해방의 쾌감과 아이들이 생각하는 귀여운 낙원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 준다. 하지만 전체적인 내러티브로 봤을 때 샘과 수지의 가출은 모종의 성년의제다. 그들은 어른들의 흉내를 내며 독립하고, 살림을 차리고, 결혼까지 한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들 속에서 '어린이들의 사랑'을 볼 수 있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것은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었다고 말하고 싶다. 댄스신동을 찾는 명절 특집 프로에서 섹시댄스를 추는 꼬마를 보는 것 같은 징그러움만이 느껴졌을 뿐이다. 열두살 짜리 소년과 소녀가 몇 장의 편지나 그들의 왕국을 찾아 떠나는 둘만의 시간을 통해 나눈 감정들은 사실 '사랑'보다는 자유를 향한 갈망과 호기심으로 보인다. 그들이 해변에서 프렌치 키스를 하고, 샘이 발기할 때까지, 그리고 수지를 'my wife'로 소개하고 결국 교회에서 결혼을 하게 되기까지, 그 행위를 가능케 만든 감정선은 관객들에게 '알아서 그러려니 생각해라' 식으로 내던져진다.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것이 사랑이든 그렇지 않든, 애어른인 그들에게서 아이다움을 볼 수 있는 부분이라곤 쉽게 흘려버리는 눈물 이외에는 없었다. 결국 수지와 샘을 갈라 놓는 것도 어른이고, 둘을 붙여 놓을 수 있는 것도 어른이었다. '샤프 소장(브루스 윌리스 분)'이 샘을 위탁하지 않았다면, 샘은 바로 고아원 행이다. 이러한 여러 점에서, 차라리 우리 나라의 <아홉살 인생>이 '아이들만의 무언가'와 같은 정서는 훨씬 더 잘 표현한 듯 하다. 종종 팀 버튼과 비교되기도 하는 웨스 앤더슨의 동화적인 연출과 디테일한 미장센 역시도 <문라이즈 킹덤>에서는 큰 두각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어른들의 세상을 위주로 그려낸 탓에, 너무 익숙해진 것들은 어떻게 배치되든 별다를게 없는 법이기에. 그의 유명한 전작 <로얄 테넌바움>에서 보여 주었던 재치와 기지들이 이 영화에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는 느낌이다.


기대가 컸던 탓에 실망도 컸던, <문라이즈 킹덤>. 그들이 열두 살에 했던 결혼을, 맹세했던 영원을 어린 날의 치기나 장난으로 치부하지 않고 죽는 날까지 이어간다는 것은 확실히 동화적 상상력이다. 그 상상력을 현실의 영역 안에 가둬 놓았기 때문에, 그들이 결국 '문라이즈 킹덤'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리라는 확신조차 갖기 어렵다. 다소 어설프게 발현된 상상력의 한계가 보여준 것은 그저 '어른아이'였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