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와 <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를 한데 묶어 쓰려고 하는 이유는, 비단 '각각 쓰기에는 포스팅 분량이 안 빠져서'만은 아니다. 두 영화 모두 매우 실험적이고 생소한 형식으로 만들어졌다는 공통점을 갖는데, 전자는 마치 과대포장된 선물이나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끊임없는-무려 세시간의 러닝타임동안 계속되는!-이야기의 연쇄로, 후자는 <클로버필드>보다 어지러운 카메라워크와 무성영화 스타일로 관객들을 괴롭힌다. 그리고 두 영화의 전체적인 내러티브 역시도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러닝타임도 각각 182분과 60분으로 어마어마한 차이를 보이지만, 앞서 언급한 난해할 정도의 형식으로 제공되는 탓에 관객들은 그 안에서 일어나는 비논리에 대해 인식하지 못한 채 두 이야기 모두를 '이야기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효과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처럼 관객으로 하여금 온전히 내러티브를 인식할 수 있도록 했을 때, 한 인간이 상식이나 이성만으로는 커버할 수 없는, '삶'이라는 방대한 범위의 소재가 갖고 있는 논리적 결함에 대해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다는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폴란드판 <천일야화>다. 최근에 본 영화 중에서는 <데드폴>과 비슷한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굵은 줄기의 이야기를 시발점으로 하여, 그 이야기의 주인공과 관련된 인물들의 또다른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들려준다. 처음 제공된 주요 내러티브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연쇄적으로 제시하면서, 결국 그 이야기는 단독으로 자연발생된 것이 아니며 그럴 수도 없다는 사실을 말한다. 동시에 그처럼 우연히 이야기의 줄기들을 얽히도록 만드는 원리의 비논리성을 짚는데, 이 영화는 그것에 대해 논리적 분석을 시도하기보다는 주어진 섭리로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인다. 교수인 극중 인물이 영화의 딱 중반부에서 무한대 기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그 예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무한대 기호를 정확히 쓸 수 있고 그것의 의미를 알 수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는 이해하지 못한다. 비슷하게, 우리는 사과 한 개와 사과 한 개를 더하면 두 개가 된다는 상식을 알고 사용하지만, 서로 다른 모양의 사과를 더했는데 왜 그것을 두 개로 치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는 수많은 이야기를 얽어냄으로서 삶이 갖는 복잡성이 자연의 섭리이며 인간의 힘으로 그 깊은 원리까지 이해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문학의 의의 또한 언급된다. <천일야화>를 비현실로 받아들일지라도 그것은 현실의 또다른 모습이며, 아무리 환상적인 이야기일지라도 그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단정은 누구도 할 수 없다. 문학은 그렇게 인간의 삶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한 이야기에서 나와 또다른 이야기로 눈을 옮긴다 한들, 교묘하게 두 이야기는 연결되어 있고, 그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와 연결되어 이 세상의 이야기 전부는 마치 끊어지지 않는 사슬과도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적 섭리는 모든 삶과 이야기에 적용된다.
<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에서도 역시 극중 인물들이 각각 갖고 있는 사연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영화 제목의 '겁쟁이'란, 결혼으로 비유되는 사회적 약속을 맺을 '용기'가 없는 하나의 인간상, 주인공 '가이'를 말한다. 누군가의 남편이라든가 하는 일종의 소셜포지션을 하나 얻게 될 때마다, 사람들의 사회적 책임은 누적된다. 또한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 이상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무엇'이라는 수식을 하나 이상 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발생되는 책임은 개인적 욕망만큼이나 중요하다. 주인공인 가이는 순간순간 마주치는 모든 이성에게 반하고 그때마다 직전에 사귀고 있던 여자들을 버린다. 그러던 중 여자친구 베로니카의 낙태 수술실에서 마주친 릴리옴의 딸 메타에게 끌리고, 그녀의 복수를 돕기 위해 '푸른 손'이 된다. 사실 가이는 '푸른 손'이 아니라 그저 '가이'였을 뿐이지만, '푸른 손'이라는 상징적 당위성을 부여받은 그는 각종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계속 살인을 저지른다. 결국 자신의 '푸른 손'을 잘라내고 난 후에야 살인을 멈출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자신의 욕망만을 좇던 가이는 박물관에 박제되어 떠먹여 주는 밥만 먹고 사는 밀랍인형들과 같이 무릎을 꿇은 자세로 박제된다. 생소한 무성영화 형식과 생각할 틈조차 주지 않는 빠른 연속성 전개는 이 비현실의 현실을 '푸른 손'의 우화로 완벽히 치환해 낸다.
형식이건 내러티브건, 공통점을 찾기가 더 힘들 듯한 이 두 영화를 공통적으로 묶을 수 있게 하는 것은 이들이 이야기, 즉 삶인 탓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에 똑같이 적용되는 이 사실은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와 <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를 한데 놓았을 때 더욱 분명해졌다. 그리고 이야기는 비현실적일수록 사실은 현실이라는 진리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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