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
우리의 삶에는 공통적으로 그런 부분이 있다. 어떤 염세주의자라도 거듭 닥쳐오는 위기의 먹구름 뒤에 햇빛이 비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언제나 좋은 일만 있을 수도, 언제나 나쁜 일만 있을 수도 없다면, 그리고 죽지 못해 살아가야만 한다면, 후자의 마음가짐이 우리의 삶에 더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닐까?
극단적으로 말해, 현대인들은 거의 모두 미쳐 있다. 사실 우리가 '미쳤다'고 부르는 그 상태는 본능적 욕망을 억압하지 못하고, 사회에서 '정상'이라 명명한 범위의 바깥에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한 모종의 억압은, '억압'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부정적 뉘앙스와는 다소 거리가 있으며 타인과 한 공간에서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규범이다. 그래서 정신병 아닌 정신병을 앓고 있는 '미친' 사람들은, 정신병원 등지에 강제로 격리되고, 보호의 명목으로 제공된 각종 약을 통해 뇌기능을 마비당해야만 한다. 그러한 광역 범위의 관리를 받고 '치료'된 후에도 관리 기록들은 고스란히 남아 또다른 관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큐브릭의 <시계 태엽 오렌지> 속 알렉스가 그러했듯, 날뛰는 본능과 욕망은 일정 부분 진정이 되어야 하는 것임과 동시에 그 진정을 위한 관리의 폭력성 역시 간과해서는 안된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티파니(제니퍼 로렌스 분)와 팻(브래들리 쿠퍼 분) 역시 그러한 방식으로 관리당해온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을 관리하는 가족과 주변인들도 관리 범위에서 사소하게 어긋나는 강박 증상을 보인다는 모순이 존재한다. 그들의 삶에서 먹구름이 걷히고 행복한 엔딩을 맞게 되는 원리는 모두가 알고 있듯, 서로가 정상에서 조금씩 벗어난 행동을 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각자의 욕망을 최대치로 올리기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세상에 균등하게 주어진 행복의 총량을 나눠가질 마음을 먹는 것, 그러기 위해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는 간단한 도덕적 논리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속 등장인물들의 사연 속에서 시종일관 맞춰 나가기 어려운 것으로 비유되다가 별안간 너무나도 쉽게 적용된다. 영화 속 이야기가 단순한 구조와 수많은 클리셰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것도 사실은 그것이 삶인 탓이었다. 어려우면서도 쉬운 것, 누군가에게는 비정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정상인 것, 슬프게도 우리는 모두 함량미달의 인간이지만, 그것이 마냥 슬프지만은 않은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원리이기에. 그래서, 이 단순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에는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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