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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스탠드, The Last Stand


김지운의 오랜 팬이다.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여타 한국영화들처럼 평범한 일상을 지닌 사람들이 아니라 최대한 '이미지화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영화에는 보기 드문 '후까시'가 들어가 있고 그것을 싫지 않게 연출한 덕에 그의 명성이 날로 높아가는 것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대중적 정서와 'B급'의 느낌을 적절히 완급조절했기에 컬트적으로도 수많은 매니아를 형성했고, 흥행도 상당히 성공한 감독이다. 그런 그에게 할리우드에서 손을 내민다. 그 결과는? 참혹한 실패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독이 어디 약점이라도 잡혀서 이 영화를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까지 들었다. 김지운의 영화에 어김없이 묻어 있던 그의 지문이 <라스트 스탠드>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즉, 이 영화는 김지운이 굳이 자기 이름을 내걸고 만들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솔직한 마음으로는, 누구도 이런 영화를 만들지 않기를 바랐다). 서부극과 히어로물이 기괴하게 혼합된 이 영화는, 서부극의 스타일은 물론이고 히어로물의 몰입도 역시 보여주지 못한다. 노장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발연기'는 여전했고, 관객을 극 속으로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캐릭터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주인공 레이(아놀드 슈워제네거 분)와 대립각을 세우는 악당 코르테즈(에두아르노 노리에가 분)마저 슈퍼카 없이는 한없이 나약한 존재일 뿐이었다. 긴장감 없는 액션연기와, 하나의 재미요소로 낭자하는 유혈을 보면 차라리 좀비영화를 찍는 편이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 말미의 레이와 코르테즈의 총격전과 육탄전에서는 액션 영화에선 느껴져서는 안될 지루함까지 감돈다. 내러티브의 단순함과 빈약함을 비주얼로 채우지 못한 탓이다.


설마설마하는 마음과 팬심으로 보았지만, 누구에게도 추천할 수 없는 영화다. 김지운 감독이 다음 헐리우드 영화를 찍게 된다면 부디 을이 아닌 갑의 입장에서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