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어떤 사람을 일컫는 말일까? 아니면 자격인가? 올해 스물일곱이 된 나를 세상은 종종 어른이라 부르지만, 우리 집에서 나는 칠십 노인이 되어도 아이다. 정신적으로 '어른스럽다'고 말하는, 성숙의 경지에 이르든 그렇지 못했든 나이가 차면 세상은 우리를 '어른의 세계'에 강제로 편입시키고, 그에 맞는 행동규범을 요구한다. <더 헌트>는 이러한 '어른'이라는 호명이 갖고 있는 폭력성과 강제로 어른이 된 이들의 유아적 행태까지 동시에 꼬집는다. 유치원 교사인 루카스(매즈 미켈슨 분)는 친구의 딸이자 원생인 클라라(아니카 베데르코프 분)를 성추행했다는 누명을 쓰게 된다. 사소한 해프닝에서부터 비롯된 사건은 어린 아이인 클라라에 대한 어른들의 보호 의욕으로 겉잡을 수 없이 커진다. 클라라는 진실을 말하라며 자신을 은근히 다그쳐오는 어른들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거짓말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자신이 꾸며낸 상황 자체를 믿어버리게 되고, 졸지에 아동 성학대 가해자가 된 루카스는 직장도 애인도 친구도, 심지어는 마트에서 장을 볼 권리마저 잃는다. 그러던 중에도 클라라가 간간히 고백하듯 말하는 진실은 그녀를 둘러싼 어른들에 의해 수치심 때문에 하는 거짓말이나 트라우마로 인한 기억상실로 치부된다. 클라라의 아버지이며 동시에 루카스의 가장 친한 친구인 테오(토마스 보 라센 분)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사람들의 눈총을 무시하고 교회에 온 루카스의 눈에서 그제서야 진실을 읽고, 일 년 후 모든 절망적인 상황들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루카스의 아들 마르쿠스(라세 포겔스트룀 분)의 사냥 면허 취득 축하파티 겸 사냥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저격을 당한 루카스는 망연자실해서 그 자리에 주저 앉는다.
우리는 어른이 구축한 세계를 살고 있다. 사실 이 세계를 만들어낸 사람이 우리가 생각하는 '어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의 이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그래왔기 때문에 그런 줄 알고 있을 뿐이며, 어른이 된 우리가 그 세계의 주역이 될 것이란 믿음을 품고 있는 것이다. 어른은 아이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 역시, '어른의 세계'의 법칙이다. 아이는 어른에 비해 약한 존재라, 돌봄과 교육의 대상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어린 아이를 보는 시각은 아이를 미성숙한 존재로, 어른을 성숙한 존재로 확고한 선을 그어 놓고, 아이의 모든 행동을 어른의 시각으로 해석하려는 의도 역시 포함되어 있다. 일정 부분 옳은 면도 있지만, 이 영화에서처럼 아이와 어른이 대립했을 때 보호라는 미명 아래 아이의 말은 '믿어 주고', 어른의 말은 얼마든지 꾸며낼 수 있는 거짓으로 여기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이 일어나지만, 그렇다고 어른이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실 이 영화 속 어이없는 해프닝은 아이가 어른에게 가하는 폭력이 아니라 어른이 어른에게 가하는 폭력이다. 아이가 우연히 만들어낸 세계를 멋대로 어른의 세계로 옮겨왔기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다. '아이는 솔직하다'는 어른의 말은, 바꾸어 생각해보면 '어른은 솔직하지 않다'는 말로 곡해될 수 있다. 가장 솔직하기 때문에 가장 거짓말을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이다. 클라라의 거짓말 아닌 거짓말들은 모두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생존을 위해 만들어낸 말들이었다. 게다가 당사자가 스스로 꾸며낸 사건을 믿어버리기까지 한다면 상황은 더욱 곤란해진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미완의 존재인 약자들-어린이와 여자 같은-은 이 영화 <더 헌트>나 수오 마사유키의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에서처럼 모종의 희생양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루카스와 텟페이는 그저 어른들이 만들고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그 상대가 어른일지라도 약한 존재를 지킨다는 믿음의 제물인지도 모른다.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루카스에게 '어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마을사람들이 행하는 잔인한 폭력은 어린 아이들이 약한 동물들에게 폭력을 가하며 즐거워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것의 재미에 자신이 약자를 지키는 정의의 수호자라는 자위까지 더해서 루카스를 따돌리는 마을 사람들의 행위는 차라리 놀이였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어른이란 상대적이면서 추상적인 가치라는 잊고 있던 사실을 되새기게 해 준다.
하지만 영화는 루카스가 스스로를 변호하려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아 관객들을 의아하게 만든다. 아무도 루카스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어느 정도 선택지가 있었다.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기는 했어도 그 이후에 더 거세진 폭력에 대해서 그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의 텟페이처럼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싸울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의심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계기 역시도 어이가 없는 수준이다. 그렇게 혐오하고 괴롭히던 상대의 눈을 잠시 마주 봤다고 해서 모든 의심과 분노가 그야말로 눈 녹 듯 사라지는 결말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루카스에 대한 괴롭힘이 사라졌다면, 그와 그의 가족들은 진심으로 사과를 받았을까? 일 년 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건이 있기 이전처럼 모여서 노는 사람들의 모습이 클라라의 엄마 아그네스(앤 루이즈 하싱)가 루카스에게 소리쳤던 것처럼 사이코패스 같았다.
심각한 내러티브의 허점들을 보였지만, 결말만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사슴 사냥을 나간 루카스가 누군가에게 저격당하고, 가까스로 피한 그가 총성이 울린 쪽을 바라볼 때 햇빛을 등진 그림자가 마치 아들 마르쿠스의 것처럼 보였다. 루카스에게 총을 겨눈 사람이 정말 마르쿠스였을 수도, 아직 앙금이 남아 있는 마을 사람이었을 수도, 아니면 루카스만의 상상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몇 개월간 그를 죽음 직전까지 괴롭혔던 기억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잔상으로 그의 곁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끔찍한 사실을 말하기에 그 짧은 장면은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나이만 찬, 가정만 꾸린 그런 어른이 아닌, 정말 '어른'의 세계라면, '부디, 당신이 심판받기 원하는 방식으로 나를 심판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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