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그 자체로 모순적인 존재다. 그리고 이 인간이라는 모순적 존재는 그가 '있는' 공간마저 모순적으로 만들곤 한다. 하지만, 인간이 이처럼 모순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어쩌면 '중력'의 존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무게를 갖고 있는 물체가 공간 안에 존재할 때 그 공간은 휘어지고, 다른 물체를 끌어 당기는 영향력을 발산한다. 태생적으로 서로를 끌어 당기는 힘을 가진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음에도, 가끔은 무중력 상태의 자유를 꿈꾼다. 중력처럼 이미 가진 것들을 끊임없이 넘어서려는 인간의 욕심을, 지구에서는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사실 먹고 사는 일은 더이상 도전의 영역이 아니게 됐음에도, 인간은 그 이상의 어떤 것들을 꿈꾼다. 그리고 그 꿈들은 인간들을 우주로 보내고, 우주 공간을 상상한 이야기들을 만들게 했다.
그러한 바람들로부터 만들어진 수많은 SF 영화들이 있었지만, 그들과 비교하여 <그래비티>가 갖는 차별점은 분명하다. 이 영화는 포스터에 적힌 홍보문구 그대로 '재난영화'다. 땅 위에서 벌어지는 재난, 쓰나미라든가 화산 폭발, 심지어는 혜성과 지구의 충돌이나 외계인의 침공과 같은 소재를 다룬 영화들은 모종의 종말론을 이야기한다. 지구 멸망을 막든 막지 못하든, 땅에 붙어 있는 인간들은 힘을 합쳐 재난을 극복하고 인간들을 포함한 지구를 지켜야만 한다. 하지만 <그래비티>는 다르다. 잔인하게 말하면,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 분)나 맷(조지 클루니 분)의 죽음은 지구에 어떤 재난도 가져오지 못한다. 이 영화의 재난은, 오롯이 개인에게만 닥쳐온다. 그런 점에서 <그래비티>는 로드리고 코르테스 감독의 <베리드>도 연상시킨다. <베리드>의 공간은 성인 남자가 몸을 구겨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관 속이고 <그래비티>의 공간은 무한하지만, 주인공들에게 이 두 공간은 그리 다르지 않다. <그래비티> 속 무중력의 우주공간에 인간이 끼어들며, 우주는 관 속만큼 부자유스럽게 변한다. 인간의 존재가 우주를 자유와 부자유, 현실과 비현실, 안전과 위험이 공존하는 모순된 공간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비티>는 이 모순된 우주라는 공간을 IMAX 3D로, 현재 가장 발달된 영화기술로 표현하여 확실하게 관객들을 압도한다. 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가 '체험'에 가깝다 느껴지는 것도 이런 이유때문이다. <그래비티>에서 돋보이는 것은 우주 공간에 홀로 떨어져도 살아남는 인간의 생명력이 아니라, 우주 그 자체다. 영화 그 자신이 무중력공간으로 화(化)하여, 시각 외의 여타 감각들이 최대한 배제된 채로 진행되기에 사실 굉장히 담담하고 심심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우주를 담고 있는 가장 현실적인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또 그런 탓에 이 영화를 담는 그릇으로 IMAX 3D라는 기술마저 모자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그래비티>는 상기의 차별점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탁월한 SF영화는 아니다. 내러티브는 너무나도 단순하고, 엄청나게 생생한 체험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사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리들리 스콧의 <프로메테우스>에서 느꼈던 압도감이나 <스타트렉 : 인 투 다크니스>에서 체험한 오락성에 <그래비티>는 한참 모자란다. 비슷한 시기의 영화들인지라 엄청난 기술적 진보도 없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 집중된 뜨거운 관심과 호평이, 조금은 의아해지기도 한다.
우리를 땅에 붙잡아 두는 물리적인 힘을 '중력'이라고 부른다. 이 영화는 거기에 더불어 인간의 마음이 가진 무게에서 발생되는 중력도 이야기하고 있다. 스톤 박사와 맷이 우주를 유영하면서도 끊임없이 바라보고 갈망하던 지구를 향하는 중력, 그 마음의 무게가 결국 그들을 살고 싶도록 만들었고, 또 이 중력은 그것의 묵직함으로 관객들을 스크린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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