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를 다루는 대부분의 컨텐츠들은, 그것의 실제 모습보다는 정형화된 이미지나 어떤 환상을 담아 표현하곤 했다. 심지어는 동성애자인 감독이나 실제 동성애자가 출연한 영화도 왕왕 이러한 경향을 보일 때가 있었다. 동성애자들의 사랑도 일반적인 이성애자들의 사랑과 다르지 않고,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점을 표현하기 위해서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미적으로 우월해야 했고, 공감을 위해 이성애보다 더 이성애같이 묘사되기도 했다. 그래서 남남커플, 여여커플이 출연한다는 것만 빼면 영화적으로 동성애를 다룬 영화들이 여타 멜로들과 어떤 차별점을 갖는가 하는 질문이 항상 남아 있었다. 그러나 사실, 동성애 영화는 이성애자들의 선입견을 공감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큰 역할을 해 낸 것이 맞다. 특정한 성별을 사랑하는, 특정한 성별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정체성만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나마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사랑의 모습과 그것의 동일한 근원을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낯설었던 동성애를 '익숙하게' 만든 것은 어찌됐든 영화 등 문화컨텐츠의 영향이 크다. 그래서 많은 감독들은 동성애자로 알려진 유명인들의 삶을 다루며 더욱 효과적으로 공감을 이끌어낸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최신작 <쇼를 사랑한 남자>는 미국의 천재 팝피아니스트인 '리버라치'의 인생을 조명하며, 대중에게 사랑받는 연예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외면받는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와 그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단순히 미적으로 봤을 때, 이 영화의 화려함은 여타 멜로영화들을 압도한다. <쇼를 사랑한 남자>의 원제 <Behind the Candelabra>만 보아도 알 수 있듯, 리버라치(마이클 더글라스 분)는 쇼를 사랑하다 못해 쇼비즈니스 그 자체가 된, 아니 그보다는 쇼 뒤에 자신을 숨기고 살아갔던 남자다. 풍성한 흑발, 짙은 화장, 보석이 촘촘이 세공된 피아노와 마치 공작의 깃털처럼 화려한 의상과 함께 관객과 소통하는 리버라치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볼거리는 충분하다. 초로의 노인이 젊디 젊은 금발 미남 스캇(맷 데이먼 분)에게 반해 사랑하게 된다는 자못 탐미적인 설정은 동성애에 대한 호불호를 차치하고라도 묘한 거부감이 들지만, 운명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리와 스캇은 순식간에 서로에게 빠져든다. 리가 침대 맡에서 스캇에게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장면은, 한 인간이 타인에게 쏟아부을 수 있는 모든 애정의 모습을 언어로 구체화하는 가장 아름다운 씬이었다.
"I'll be your father, brother, lover, and best friend.."
하지만, 진정한 사랑이 어떤 것이라고 섣불리 단언하기는 힘들더라도, 이들의 사랑은 우리가 '진정한 사랑'이라고 부르는 전형적인 것과는 멀어 보인다. 스캇과 리는 세상 어느 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불같이 사랑에 빠졌지만, 이내 그 사랑에 매몰되어 존재가 희미해진 그 전의 자신을 그리워하게 된다. 누군가의 애인으로만 살아가야 하는 삶은, 실로 그 처음만 달콤했다. 어쩌면 그들은, 각자 당시의 자신에게 결여되어 동경해 마지않던 부분을 서로에게 발견하고, 상대방과 사랑하게 되면서 그 부분을 '소유하게 되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끝나고 났을 때 우리는 종종 상대방을 사랑했는지, 그를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했는지 모호해할 때가 있다. 그들의 사랑에서도, 어쩔 수 없이 그런 부분들을 발견한다. '너무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말을 믿지 않더라도, 사랑을 하며 포기해야 하는 욕망의 기회비용들이 아쉽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상대방처럼 변해가는 자신과 자신처럼 변해가는 상대방의 모습에 빠져있던 스캇과 리의 사랑은, '최고의 사랑'이었지만 '최선의 사랑'은 아니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은 <제이, 에드가> 역시 동성애자로 알려진 유명인의 삶을 다뤘다. 미국의 전통적인 보수파로 알려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시선으로 바라본 에드가 후버의 인생은, 스티븐 소더버그가 표현한 리버라치의 인생보다 훨씬 담담하게 연출되지만 그 만듦새만은 우월하다. 동성애자이지만 호모포비아인 척하며 살아야 했던 것은 에드가 후버와 리버라치 모두 동일하지만, <쇼를 사랑한 남자>에서 그러한 갈등이나 리버라치의 인생에서 겪었던 트라우마는 모두 자기애로 포괄되는 한계를 보인다. 어떠한 에로틱함 없이도, 평생의 동반자 클라이드(아미 해머 분)의 주름진 이마에 키스하는 에드가의 마지막 모습은 그들의 오랜 사랑이 완성되는 순간을 나지막히 고백한다. 그에 비해 <쇼를 사랑한 남자>는, 격정적인 사랑의 기복과 그 안에서 망가져가는 인간의 모습으로 끝까지 달려가다가, 죽음을 눈 앞에 둔 리버라치가 갑자기 스캇을 불러 회고하듯 '너와의 사랑이 최고였다'고 말하며 급하게 아름다운 마무리를 시도한다. 동성애라는 내러티브의 특수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막장드라마를 방불케하는 흡인력이, 마지막까지 막장드라마의 결말처럼 당연하게 끊겨버리는 것이다. <쇼를 사랑한 남자>는, 피아노에 예쁜 촛대를 올려두었을 때부터 쇼 그 자체로 살아온 리버라치도, 그의 최고의 사랑도, 그의 촛대 뒤 인생도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다. 마이클 더글라스와 맷 데이먼의 호연이 아니었다면, 그 아름다움 자체도 놓칠 뻔한 영화다. 특히 훈훈해지던 심장을 갑자기 차갑게 만든 장면은, 리와 헤어진 스캇이 이성애자의 삶을 흉내낸 리의 자서전을 보는 순간 록 허드슨이 에이즈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1면에 난 신문을 함께 비추는 것이었다. 감독의 의도가 어찌됐든 에이즈는 게이 섹스가 원인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다시 환기되는 순간이다. 왜 거기서 에이즈를 그렇게 다뤄야만 했을까? 리버라치가 사망한 원인이 정말 게이 섹스에 의한 에이즈 감염과 그 합병증이었을지라도 말이다.
<쇼를 사랑한 남자>의 복고적인 카메라 워크는, 쇼가 된 남자 리버라치를 영화 그 자체로 만드는 탁월함을 지니고 있었다. 리버라치 특유의, 촌스러울 정도의 화려함을 카메라 워크로 옮긴 듯했다. 거의 굿윌헌팅 시절을 연상시킬 정도로 뽀송해진 맷 데이먼이나 노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에너지를 스크린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게하는 마이클 더글라스의 호연은 물론이고, 미장센이나 카메라워크만 보아도 미적으로는 정말 반짝이는 영화였지만, 결국 리버라치의 삶을 이도저도 아닌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함정을 파 놓은 영화가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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