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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 전성시대’? 한국 영화계의 위기입니다

‘외화 전성시대’? 한국 영화계의 위기입니다

‘외화 전성시대’라는 말이 참 오래도 들려옵니다. 올 초 ’킹스맨’을 시작으로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까지 상반기 장기 흥행작들은 전부 외화였습니다. 그에 비해 한국 영화의 성적은 참담합니다. ‘쎄시봉’, ‘허삼관’, ‘장수상회’ 등 기대작들도 손익분기점을 크게 밑돌며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뒤늦은 입소문조차 터지지 않는 꼴입니다.

이처럼 상반기 한국 영화 중 이익을 한 푼이라도 낸 영화는 손에 꼽습니다. ‘스물’ ‘악의 연대기’ ‘차이나타운’ 정도가 힘겹게 손익분기점을 넘겼습니다. 그러나 영화의 만듦새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입니다. 어느 정도 흥행이 보장된 장르의 전형적 문법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사극이 흥행하면 사극 영화만 나오고, 스릴러가 잘 되면 스릴러물만 나옵니다. 해당 장르를 잘 소화하는 배우들은 여러 영화에 ‘겹치기 출연’을 하기도 하죠. 그런 탓에 요즘 한국 영화에는 비슷한 얼굴, 기계적 반전과 억지 웃음이 난무합니다. 자연히 관객들은 새로운 영화를 찾아 떠나겠지요.

구조적인 부분을 들여다 봅시다. 외화와 한화 모두에 적용되는 문제이긴 하지만, 스크린 독과점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지난해 ‘국제시장’과 ‘명량’이 흥행 돌풍을 일으켰으나 스크린 독과점 논란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올해 최고의 흥행작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이 영화는 역대 최고의 스크린 점유율을 자랑했지만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좌석 점유율로 빈축을 샀습니다. 관객이 별로 들지 않더라도 많은 상영관에서 영화를 튼다는 말입니다.

기록에 집착하는 경향 때문일까요? ‘천만영화’들은 대부분 이 문제를 껴안고 갑니다. 제작사와 배급사들은 작품성보다는 누적관객수, 스크린 점유율, 흥행 수입 등 숫자로 말하는 영화들을 선호합니다. 이 과정에서 ‘다양성 영화’의 자리는 실종됩니다. 올 초 ‘개를 훔치는 방법’의 제작사 삼거리픽쳐스 엄용훈 대표가 청와대에 독과점 문제 해결을 읍소했던 사건도 이를 방증합니다. 종국에는 관객의 개인적 취향도 업계가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되겠지요. 그야말로 악순환입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경우를 보면 어느 정도 참고가 될 만한 상황들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중국에 밀렸지만, 일본 영화계는 한때 영화시장 규모로 세계 2위를 자랑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천만영화’에 해당할 정도로 흥행한 작품은 드뭅니다. 대신에 손익분기점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흥행한 영화들이 여러 편 나오지요. ‘쏠림 현상’ 이 없다는 말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대박영화’와 ‘쪽박영화’가 동시간대에 공존할 정도로 관객수 양극화가 심각합니다.

또 일본 영화계에는 다양성이 보장됩니다. 소설과 만화 등 풍부한 문화 콘텐츠가 기반이 되어 이를 원작으로 만든 다양한 영화들이 생산됩니다. 그래서 창작 작품이 부족하다는 한계점도 있지만, 작은 영화에도 관객이 몰립니다. DVD 및 블루레이 등을 렌탈하는 2차 시장의 수익 구조도 저작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꾸려져 있기 때문에 영화 수입도 충분히 보전됩니다. 영화 관련 물품도 잘 팔립니다. 그래서 할리우드 영화가 월드 프리미어를 개최할 적에는 아시아 국가 중 일본만 들렀다 갔던 때도 있었죠.

한국 영화계는 최악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한때 종이 만화 시장이 사장됐던 것과 같은 수순을 밟을 수도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선적으로는 스크린 독과점을 막고 시장 건전성을 확보하는 방법을 단계적으로 찾아야겠습니다. 또 IMAX, 4DX, 3D 등 영화를 색다른 방법으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포맷이 등장한 결과 그 반대편에 ‘돈 주고 볼 필요 없는 영화’의 자리가 생겨난 것도 사실입니다. 특정 장르는 뉴스가 그러했듯 ’공짜 콘텐츠’라는 인식이 굳어져 버리게 됩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문화 콘텐츠의 외연을 넓힐 필요가 있겠지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고, 그 이야기를 공평하게 상영하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국 영화계가 다시 전성기를 맞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