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RCHIVE 1

'너희들은 포위됐다',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딴지걸지 말자?

시청자들로 하여금 드라마를 선택하게 하는 매력은 무엇일까? 사실 보고 즐길 거리가 부족했던 지난날에 비해 영상 콘텐츠의 외연은 놀랄 만큼 확장됐다. 여가 선용의 폭이 좁은 한국 문화 특성상, 다소 수동적이지만 비교적 용이하게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영상 콘텐츠들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콘텐츠를 제공하는 방송국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개인이 다양한 포맷의 힘을 빌려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경우 역시 증가하는 추세다. 이렇게 현대의 대중은 콘텐츠의 '데이터 스모그' 속에서 살아가게 됐다. 

그래서 콘텐츠들은 대중의 간택을 받아 생존하기 위한 경쟁 체제에 돌입했다. 결론적으로, 매력이 없는 콘텐츠는 자동으로 도태된다는 '쌀로 밥 짓는 소리'는 아직도 유효하다. 그리고 콘텐츠가 대중을 상대로 어필할 수 있는 가장 큰 매력은 단연 '재미', '웃음'이다.

지난 5일 첫 방송된 SBS <너희들은 포위됐다>(이하 '너포위') 역시 나름의 매력을 갖춘 콘텐츠다. <너포위>는 준수한 외모의 강력계 신입형사 네 명에게 'P4'라는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작명을 한 뒤, 그들을 극의 전면에 내세운다. 

다수의 드라마에서 이미 '리모콘 파워'를 입증한 젊은 배우 이승기와 고아라는 물론, <별에서 온 그대>로 얼굴을 알린 모델 출신 신예 안재현에, 영화 <파수꾼>의 젊은 연기파 박정민의 이름만으로 어느 정도의 시청층을 확보한 상태였다. 거기에 '시청률 보증수표' 차승원까지 가세한 <너포위>의 시작은 자못 막강해보였다.

6회까지 방영된 현재, <너포위>에 쏟아진 이 같은 기대들은 시청률로서 어느 정도 증명이 됐다. 수목극 3파전에서 3주째 1위를 수성중이다. 그러나 <너포위>가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 드라마의 매력이 다양한 후속작들을 낳을 수 있는 지속가능한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즉답을 하기는 힘들 것 같다.

<너포위>는 대한민국의 각종 욕망들이 집결한 강남구에서 강력계 신입 형사가 된 P4의 성장과정을 내러티브의 주요 골자로 한다. 결국 표방하고 있는 것은 청춘드라마다. 청춘의 땀과 눈물을 강조하기 위해 그들의 직업은 가장 치열하고 고된 이미지를 갖고 있는 형사여야 했다. 

이러한 설정은 극을 현실과 맞닿게 하여 시청자의 몰입을 높이게 하는 장치다.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드라마 밖의 현실을 산다. 하지만 이들은 드라마를 보며 그 안의 만들어진 현실에 몰입한다. 그래서 드라마 안의 현실은 비현실일지 몰라도, 이것이 현실과 닮아있을수록 시청자들의 감정이입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너포위>가 구축한 현실은 어떠한가. 가장 치열한 현실의 모습을 빌려왔음에도 <너포위> 속 세상은 한없이 비현실적이다. 은대구(이승기 분)는 어머니의 죽음에 서판석(차승원 분)이 연관돼 있다고 생각, 그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운다. 은대구는 서판석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가 근무하는 강남경찰서 강력계에 들어간다. 여기까지는 여느 통속극의 복수 관련 내러티브와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간다. 

문제는 은대구의 태도다. 일례로 은대구가 서판석을 상대로 벌이는 하극상은 실로 참담하다. 이는 자신의 신념을 공고히 하거나 상사의 부조리를 지적하는 수준을 넘어서, 은대구가 서판석에게 느끼는 분노로도 정당화되지 않을 정도다. 은대구의 언행에서는 부덕한 상사를 논리로 격파하는 통쾌함보다 황당함이 느껴진다. 게다가 스토킹 피해자를 형식적으로 대하자고 말하는 은대구의 모습은 어린 시절의 그가 서판석에게 "어머니를 지켜준다고 하지 않았냐"며 절규하던 모습과 완벽히 이율배반을 이룬다.

은대구가 보유한 '포토그래픽 메모리' 능력도 아직까지는 극과 겉돈다. 주인공이 모든 것을 사진을 찍은 것처럼 기억하는 포토그래픽 메모리라는 특수한 능력을 보유했다는 설정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이미 다수의 수사극에서 주인공에게 천재성을 부여할 목적으로 유사한 특수 능력들을 발명해 극에 녹여냈던 터다. 

<너포위> 3회의 스토킹 사건 에피소드를 살펴보자. 은대구는 어수선(고아라 분)과 한 팀이 되어 대망의 첫 사건을 맡게 된다. 스토킹 범죄를 담당하게 된 두 사람은 범인 검거 후에 이어질 솜방망이 처벌에 불만을 갖는다. 이에 어수선은 범인에게 좀 더 큰 처벌을 받게 할 목적으로 임의 수사를 진행하다 스토킹 피해자가 칼을 맞게 만드는 참사를 발생시킨다. 

스토킹 피해자가 칼을 맞기 직전 은대구는 자신의 포토그래픽 메모리 능력을 사용해 용의자의 이상 징후를 발견한다. 물론 거의 '사후약방문' 격인 능력 발동 시기도 문제가 되지만, 은대구가 포토그래픽 메모리 능력을 활용해 범인이 피해자에게 직접적 공격을 가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내는 장면에서 허점이 드러난다.

범인의 SNS 활동을 분석해 행동패턴을 유추해낸다는 수사방식은 매우 시의적절하면서도 은대구의 포토그래픽 메모리 능력과 맞물려 그럴싸한 시너지 효과를 냈다. 항상 질서 정연히 규격을 맞춰 글을 쓰던 범인이 한 군데씩 맞춤법 실수를 저지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까지도 납득 가능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은대구는 범인의 실수 안에서 범행과 연관된 결정적 규칙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이는 은대구의 성장 과정을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실수를 위한 실수였던 탓이다. 은대구가 범인의 맞춤법 오류를 발견해서 범행 장소를 도산공원으로 추측하는 과정은 개연성이 담보된 추론행위라기보다는 육감과도 같은 것이었다.

<너포위> 4회에서 발동되는 포토그래픽 메모리 능력 또한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은대구가 범인의 다이어리에서 언뜻 봤던(은대구가 지닌 초능력과 근접한 수준의 시력은 넘어가는 것으로 한다) 범인 어머니의 기일을 들어가며 그를 설득하려 하는 장면이 있었지만, 사실 이는 불필요한 장면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5회에서도 은대구의 능력이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 장치가 되지 못했던 것은 마찬가지다. 주인공의 능력이 사건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캐릭터는 한순간에 붕괴될 수도 있다. 이는 지금 은대구 캐릭터의 구축에서 가장 경계해야할 부분일 것이다.

은대구의 특수 능력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다른 부분을 차치하고라도 드라마의 세계관을 떠받치고 있는 가장 큰 대들보 중 하나인 포토그래픽 메모리라는 설정에서 허점이 드러날 경우, 이어질 내용에서 시청자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더 큰 설정을 추가해야 하기 때문에 이 능력은 극 초반부터 중심을 잡아야만 한다. 포토그래픽 메모리 능력은 마치 영국드라마 <셜록>을 연상케 하는 연출로 시청자들의 주목을 이끌어냈지만, 이것이 극의 후반부까지 주효하게 작용할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너포위>는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극단적 상황을 제시해 놓고 이것이 우리들이 처한 현실이며, 주인공의 성장과정 일부라는 미명으로 무마하려는 모습을 보여 준다. 거기에 은대구와 어수선의 어이없는 실수로 사경을 헤매던 스토킹 피해자는 치료 끝에 살아났다는 사실만으로 은대구와 어수선에게 면죄부를 제공한다. 

죄책감에 피해자의 병원을 찾은 어수선에게 김사경(오윤아 분)은 "운 좋은 줄 알라. 피해자가 살아났다"고 말한다. 그리고 김사경의 한 마디로 스토킹 사건은 종결됐다. 죄책감에 사표를 냈던 어수선은 P4와 더불어 벚꽃 길을 걸으며 "이게 청춘이니까"라고 형사생활을 이어나갈 것을 다짐한다. 

이 같은 자기방어에 의한 망각은 끔찍하기까지 하다. 칼을 맞아 죽을 위기에 처한 스토킹 피해자는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은 경찰들이 병실을 찾아왔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간단히 용서하고, 미소까지 건넨다. 또한 이혼한 김사경과 서판석의 애절한 러브스토리를 상기시킬 목적으로 7살 어린아이가 뺑소니 사고의 희생양이 됐다. 그렇다면 과연, 이렇게 끔찍한 것만이 현실일까?

5회에서 6회에 걸쳐 그려진 한 검사(임승대 분)와 서판석의 악연 또한 비현실과 현실의 경계를 위태롭게 넘나든다. 현재 검찰과 경찰 간에 형성돼 있는 상하관계에서 왕왕 목격되는 부조리한 상황들을 서판석과 한 검사의 입을 빌어 표현한 것까지는 좋다. 과장되어있기는 하지만, 어찌됐든 현실에서 목도할 수도 있을 법한 상황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판석이 한 검사를 폭행하고 유치장에 갇혔을 때, 은대구는 한 검사의 지갑을 훔쳐 유흥업소 영수증을 발견해냈다. 은대구는 그것을 서판석에게 넘겼고, 서판석은 그 영수증으로 한 검사를 협박해 유치장에서 풀려난다. 이 같이 은대구 캐릭터가 자행하는 자잘한 범법행위들은 작가의 범죄 감수성이 무디다는 사실을 방증하며, 캐릭터의 행동에 정당성을 뺏는다. 

서판석이 한 검사의 '긴밤천국' 영수증을 보유했으며 이를 그의 아내에게 알리겠다는 협박을 하는 장면에서는 실소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윗선에 알리겠다는 엄포도 아니고, 아내에게 알리겠다니. 6회가 종료된 뒤 에필로그 형태로 방송된 해당 장면은 무려 2화를 할애해 끌고 온 에피소드를 억지스럽게 봉합한다.

어수선 캐릭터 역시 대책 없는 감정이입으로 수많은 드라마 속에서 '민폐녀'로 전락한 여주인공들의 뒤를 답습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와 '민폐' 캐릭터를 결정짓는 것은 적절한 이성의 발동이다. 이는 비록 한 끗 차이일지언정, 매우 결정적인 부분이다. 공명심만으로 대책 없이 감정만을 내세울 경우 아무리 옳은 일을 하더라도 캐릭터의 행동에 정당성은 결여된다. 긴박한 상황을 더욱 극한으로 몰아가는 대사와 행동들이 어수선에게서 나올 때마다 그녀가 과연 성장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증폭된다.

김사경 캐릭터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등장하자마자 전 남편 서판석의 뺨을 때린다거나, 뺑소니 사고에 희생된 아이의 어머니에게 "당신이 아이를 잘못 봐서 생긴 일 아니냐"고 화를 내는 김사경의 모습에서 가족을 잃은 여자의 상처보다는 조절되지 못한 분노가 보인다.

<너포위>에서 발견된 이 모든 허점들을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딴지 걸지 말자'의 논리로 무마하기에는 배우들의 호연이 안타깝다.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노선을 확실히 해야 한다. 

굳이 인기 드라마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보통의 연속극은 진지한 분위기를 바탕으로 코믹 코드가 양념처럼 곁들여지거나 그 반대로 진행된다. <너포위> 역시 코믹함과 진지함을 넘나드는 연출을 보여주지만, 아직까지는 갑작스런 온도 전환이 허를 찌른다기보다 맥을 끊는다는 느낌을 준다.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검찰과 재계의 유착 등 각종 사회문제들이 극 안으로 빨려 들어왔지만, 여기서 진지하게 무언가를 성찰해 보기에는 전개되는 상황이 극단적이고, 우연적이다. 극한으로 치달은 <너포위> 속 상황들이 개그 코드로 무마될 때, 터지기 직전까지 팽팽하게 부푼 풍선의 주둥이를 갑자기 놓은 것처럼 허무해진다.

극의 1/3 가량이 진행된 지금, 코믹과 진지를 급하게 오고가는 연출보다 일관성이 필요하다. 극이 대놓고 코믹을 표방했을 때, 극에서 제시되는 비현실적 설정들의 용인가능성은 마치 '시적 허용'을 접할 때처럼 확장된다. 반대로 극의 방향을 진지코드로 일관하기에는 보완해야 할 설정들이 많고, 타사 경쟁드라마인 MBC <개과천선>과 비교를 피하기 어려우므로 리스크가 따를 수 있다.

현재 <너포위>에 출연 중인 배우들은 모두 정극과 희극을 소화 가능한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녔다. 그러나 드라마는 이러한 배우들의 장점을 이용해 코믹과 진지를 어설프게 섞어내려는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다. 

<너포위>에는 SBS의 월화수목을 장악했던 드라마 <쓰리 데이즈>나 <신의 선물>과는 전혀 다른 수사드라마로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비현실적이고, 가끔은 실소만이 피식 터져 나오는 '병맛 코드'이지만 이는 지금도 <너포위>의 시청률을 떠받치는 상당한 경쟁력이다. 특유의 코드와 배우들의 호연을 적절히 배합해 코믹 수사물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