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KBS 1TV 대하사극 '정도전'(극본 정현민·연출 강병택 이재훈)에서는 이성계(유동근 분)세력의 전제개혁을 반대하던 하륜(이광기 분)일파가 정도전(조재현 분)에 의해 옥에 갇히는 장면이 방송됐다.
하륜은 역사 속에서 상당히 독특한 포지션을 지닌 인물이다. 정도전 정몽주(임호 분) 등과 함께 목은 이색(박지일 분)의 문하생으로서 성리학을 공부한 유자(儒者)였지만, 동시에 권문세족의 수장인 이인임(박영규 분)의 조카사위이기도 하다. '정도전' 초반 하륜은 처백부 이인임의 곁에서 권모술수를 배우며 성장했다. 이인임은 하륜에게 "정치하는 사람에게는 딱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적이고, 다른 하나는 도구다" "바둑에서 상대의 손을 따라 두면 필패다. 정세가 불리하니 일단 손을 뗀 뒤 상대가 예측하지 못한 것을 찔러가야 한다"는 등의 말들로 정치를 가르쳤다.
하륜은 이인임의 최측근이었지만, 결코 신진사대부들과 척을 지지 않는다. 실제로 사형 박상충이 무고하게 옥에 갇혔을 때나, 정도전이 이인임과의 대결에서 패해 귀양을 갔을 때 하륜은 결코 그들을 저버리지 않았다. 또한 하륜은 불교나 도교 등의 타 학문을 철저히 배제했던 정도전에 비해 유연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정도전' 속에서 이인임의 노채(폐결핵)을 처음 진단했던 것 역시 하륜이었다.
'역피셜(역사+오피셜의 준말로, 역사를 다루는 사극 속 인물의 생몰과 그 원인이 이미 알려져 있다는 뜻에서 쓰이는 말)' 탓에 시청자들은 이미 하륜이라는 인물이 여말선초라는 격동기를 끝내 버텨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한 하륜이 훗날 태종이 될 이방원(안재모 분)을 도와 정도전을 제거하는데 일조했다는 것 역시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기에 아직 조선 건국의 대업이 이뤄지지 않은 '정도전' 속에서 하륜이라는 인물의 비중은 한미한 상태. 하지만 정치 싸움에서 패해 귀양을 갔다가도 어느새 도당에 복귀하고, 빠르게 자신이 있을 진영을 찾아 옮겨다니며 한번도 정치를 놓아본 적 없는 하륜은 단연 '정도전'의 '씬스틸러' 중 하나다.
'정도전'에서 하륜은, 다른 인물들과 다르게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당여들을 모으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는 항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편으로 스스럼없이 이동하되, 군중 안에 몸을 숨긴 채 묻어가는 비겁함을 거부한다. 하륜은 이인임의 수족과도 같았던 염흥방과 임견미보다도 더욱 영민하게 이인임을 보좌했다. 또 하륜은 이인임이 죽고 난 뒤 도당에서 내쳐지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온건 개혁파 진영에 합류해 정치적 생명을 이어나간다. 권문세족의 편에서 이인임을 보필하던 하륜은 어느새 아무렇지도 않게 신진사대부들 사이에 끼어 목소리를 내지만, 이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하륜의 이 같은 처세를 '곡학아세' 격으로 폄하할 수는 없는 이유는, 그가 정치진영의 선과 악을 쉽사리 가를 수 없음을 알고 진영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었다.
정치란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며, 사람을 위한 일이다. 하륜은 '정도전' 안에서 적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고 아군이 생각보다 착하지 않다는 진리를 깨우친 인물이자, 진영 자체가 의인화되어 정치대결이 단순한 싸움으로 전락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았던 정치가로 그려졌다. 하륜은 정치진영이 그 안의 개인과 동일시되는 순간, 개인은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자신의 변호에 급급한 자가당착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하륜은 결국 역성혁명의 주역이 된 급진개혁파 정도전보다, 왕(王)씨의 고려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온건개혁파 정몽주보다 영리하고 성숙한 정치가였을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훗날 이방원과 손을 잡아 역사 속 '최후의 승자'로 남는 하륜의 처세가 더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10일 방송된 '정도전'에서는 아버지 이성계가 보위에 오른 후 다섯째 아들임에도 세자가 될 날을 꿈꾸는 이방원의 야심이 본격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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