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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1

디스커넥트, Disconnect


기록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기억의 휘발성 때문에 발명된 이 '기록'이라는 장치는, 현대에 들어와서는 더욱 입체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현대의 기록은, 그 무게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워지고, 쉽게 복제할 수 있게 되어서 이전보다 훨씬 수많은 사람들에게 '살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빌렘 플루서의 말처럼, 사람들이 상상을 가공하는 방식은 이미지에서 텍스트로 갔다가, 다시 이미지로 회귀한다. 처음의 이미지는 완벽하게 똑같은 것을 복제해낼 수 없는 고유물이고, 이동에 제한이 있는 실물이었다. 인간이 이 이미지를 볼 때, 즉물적으로 개인의 감각에 와닿는 것이 있었고, 대부분의 관찰자들은 비슷한 내용의 감상을 내놓게 된다. 텍스트는 그 이미지를 글로 옮겨낸 후 그것을 읽는 자들의 머릿 속에서 다시 재현된다. 각자의 상상이 이미지보다는 제각각일 것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시대의 이미지는 어떠한가? 0과 1의 점묘법으로 그려진 이미지를 접할 때, 우리는 그것을 해체하고 재가공할 여지까지 부여받는다. 싸구려 점덩어리에 불과한 디지털시대의 이미지는, 오히려 '제대로' 취급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디스커넥트>는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타인의 삶에 대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하여 편의에 의해 강제로 디지털 이미지화된 개인의 삶이 생각지도 못한 위기에 빠진 현실을 이야기한다. 시대는 사상이 없이 너무 급격하게 발전했고, 현재 인간의 손에는 작지만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스마트 기기들이 들려있지만 그것을 바르게 사용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우리는 배우지 못했다. 스마트 기기와 각종 소프트웨어들이 발명되기 전에도 인간은 일정 수준의 관음증과 노출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기계로 쟁취한 자유의 고삐를 당길 수 있는 장치는, 아직이다.


우리는, 왜 SNS를 할까? <디스커넥트> 속 모든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물리적 행동반경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 가까이 살거나, 면대면으로 늘 마주치는 사람들과 우리는 피상적 대화, 이를테면 '좋은 아침'이라든가 '점심 메뉴는 무엇이냐' 따위의 말들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이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가까울 때, 보다 깊은 교류는 외려 어려워진다. 심리적/물리적 거리가 먼 사람과의 교류가 가능해진 상황에서 우리가 가진 타인의 삶에 대한 '궁금함'의 방향은 가까운 곳보다 먼 곳으로 향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때, 현대인들은 가까운 이들과 속깊은 이야기 한마디를 더 나누려하지 않고 즉각적인 만족을 줄 수 있는 먼 이들을 찾는다. 그리고 우리 개인의 사생활은, 그 자체로 디지털 이미지가 되고, 하나의 상품이 된다. 유료 결제를 거치면 소년의 자위 동영상을 볼 수 있고, 개인정보는 헐값에 팔려 나가는 것이다. 또 인간이 스마트 기기를 손에 넣은 후로, 그 인간을 가장 잔인하게 괴롭힐 수 있는 방법도 동시에 손에 넣었다. 한 번의 터치로 전교생에게 나체 사진을 유포되어 자살시도를 하는 고등학생의 이야기가 이를 방증한다. 그리고 이 모든 갈등의 기저에는, '고독'이 있다. 좁은 스마트 기기의 화면 안에 매몰될 기세로 거기 빠져든 우리는, 쉽고 빠르게 고독을 해소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 고독의 해소는 너무나도 순간적이다. 마치 마약같이 순간을 달래는 행위가 보편화된 탓에, 우리는 좀더 공을 들여야 하고, 돌아가야 하지만 본질적인 고독을 해소하는 방법을 외면하게 되버린다. 그때 우리가 좀더 서로를 들여다보고, 다독였더라면. <디스커넥트>가 던지는 메시지는 이처럼 뻔하고 단순하지만, 진리임을 부정하기 힘든 것이었다. 


<디스커넥트>를 보며 느낀, 감독이 SNS 혹은 인터넷 시대 전반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소 일차원적이고 교훈적이기만 한 것처럼 보인다. 시대는 변했다. 이 영화에서는, 변한 세상에서 생기는 갈등의 해소를 변하기 이전의 세상에서 찾는 봉건적인 태도만을 찾을 수 있다. 가까운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관심을 가져라. 너무 당연해서 30대에 읽는 도덕교과서같은 느낌이 드는 말이 아닌가. 이 영화를 통해 어느 정도의 경각심을 줄 수는 있겠지만, 그 또한 찰나다. 우리가 이미 한없이 가벼운 싸구려 이미지가 된 우리의 일상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다시 사람에게 회귀해서만 찾을 수 있지는 않을 듯하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SNS 발명 초창기에나 있었어야 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자의로는 'disconnect'하기가 힘들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