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방송된 KBS 1TV 대하사극 '정도전'(극본 정현민·연출 강병택 이재훈)에서 정몽주(임호 분)의 주도에 폐위된 우왕(박진우), 창왕 부자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앞서 우왕은 위화도 회군 이후 자신을 압박해 오던 이성계(유동근 분)를 죽이려 했었으나 실패한 뒤 폐위당해 강화도로 귀양을 갔던 바 있다. 이후 우왕은 김저 와 정득후를 통해 다시 한 번 이성계를 암살하려 했으나, 곽충보의 밀고로 인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 후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사실 난감한 것은 이성계도 다르지 않았다. 원나라가 사실상 멸망하고 새롭게 중원의 패자(覇者)가 된 명나라는 고려에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으려 들었고, 이미 우왕을 폐위했던 이성계가 다시 창왕을 폐한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이성계는 정몽주(임호 분)가 자신의 목숨을 끊는 심정으로 제안했던 '폐가입진(우왕과 창왕을 신돈의 자손으로 몰아, 그들이 거짓된 왕이므로 폐위해야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왕과 창왕은 믿었던 정몽주의 주도 하에 비참한 죽음을 맞으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아버지 공민왕이 시해된 이후 한순간도 왕다운 왕으로 살아본 적 없던 우왕의 최후는 '정도전'에서 의미있게 그려진다. 1996년 방송된 KBS 1TV '용의 눈물'에서 우왕은 죽기 직전 상의를 풀어헤치며 자신의 겨드랑이에 돋아 있는 용의 비늘을 보여 준다. 고려의 대통을 이어 온 왕(王)씨 일가는 서해 용왕의 자손이기 때문에 몸에 용의 비늘이 존재한다는 야사를 차용한 대목이다. '용의 눈물' 속 우왕은 죽음을 맞는 순간 그 비늘이 실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자신이 신돈의 자식이라는 항간의 소문을 부정한다. 그러나 '정도전'의 우왕은 인두로 자신의 몸을 지져서 비늘 모양의 흉터를 만든다. 신돈의 사가에서 살다가 대궐로 옮겨져 졸지에 세자가 된 우왕은 내내 '공민왕의 아들 왕우가 아닌 신돈의 아들 신우'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만 했다. 우왕 모니노의 마지막은 더없이 처연했다. 그 이유는 우왕이 고려의 정점에 서있었음에도 은연중에 고려 왕실과 조정에서 타자화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우왕이 자신의 몸을 인두로 지지게 만들었던 출신 컴플렉스는, '변방의 촌뜨기' 이성계에게도 존재했다. 이성계는 정도전의 끈질긴 설득에 위화도 회군을 결심하는 순간에도 우왕에게 이를 알려 정당성을 부여받고 싶어했다. 그는 자신의 출신이 이 나라에서 위험한 것으로 간주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성계는 고려 안에 온전히 편입되기 위해 그 어떤 고려인보다도 나라에 멸사봉공해야만 했다. 이성계의 인생에서 자신을 처음 주군으로 모셔준 사람은 정도전이었지만, 마음을 갈구하게 했던 사람은 정몽주였다. 이는 집안 대대로 동북면을 지켜왔지만 항상 '변방의 촌뜨기'로 불릴 뿐이었던 이성계의 가치를 고려에서 처음으로 인정해준 인물이 정몽주였던 까닭이다. 정몽주는 모두가 이성계를 앞에서 조롱하고, 뒤에서는 두려워하며 그를 제거하려 할 때도 아무 조건 없이 이성계의 곁에 있어주었다. 이성계의 출신 컴플렉스를 감싸안는 정몽주의 관용은 현대에도 귀감이 될 법하다.
고려 사회는 '부원배', '신돈의 자식'이라는 낙인을 통해 우왕과 이성계를 타자화했다.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군중속의 고독을 느껴야만 했던 두 사람의 인생은, 다수가 소수를 타자화하는 사회적 폭력의 폐해와 관용의 중요성을 시사하고 있다.
우왕은 이성계를 암살하려다 실패한 후 그에게 "나는 너와 같지 않다. 나는 서해 용왕의 핏줄인 왕씨의 후손이고, 너는 변방 오랑캐에 빌붙어먹은 천한 핏줄 아니냐"고 말한다. 타자에 대한 관용 대신 배격이 더 심했던 사회를 살아가던 슬픈 이방인들은, 그렇게 서로에게 칼날을 겨눈다. 이는 마치 생존본능과도 같은 것이어서 더욱 슬프다.
'정도전'은 같은 타자의 입장인 이성계와 우왕을 대비해 보여주며 타자들이 열등감을 딛은 채 분연히 떨치고 일어서는지, 아니면 그 열등감에 잡아먹히는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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