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영화로 표현해내겠다고 할 때, 불륜은 그에 가장 걸맞는 소재다. 결혼이라는 관계를 맺음으로서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모든 것들을 포기하면서까지 불륜남녀들이 쫓은 것은 결국 이전의 상대보다 '좀 더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습게도 불륜은,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이란 말처럼 당사자들에게만 아름다운 이야기일 뿐 그 관계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인간사의 가장 '더러운'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불륜의 추잡함이 오히려 탐미주의의 절정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장치로 작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대문호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를 알고 있다. 데이비드 린이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닥터 지바고>처럼 '세기의 치명적 로맨스'와 같은 수식을 달고 있지만, '한 귀족 부인과 젊은 장교의 불륜이야기'라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도 있는 이야기다. 그래서 매주 금요일 방송되는 한시간 남짓의 드라마 <사랑과 전쟁>과도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불륜담은 이미 과거 수차례 영화화됐을 정도로 힘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닥터 지바고>를 보고 나서, '유리 지바고 개새끼'를 외치면서도 얼마간은 영화의 여운에 젖어 멍해지는 것처럼, <안나 카레리나> 역시도 그런 여운을 준다. 같은 불륜이야기라도 관객들은 <사랑과 전쟁>만큼 분개하고, 욕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감상방식으로 <닥터 지바고>나 <안나 카레리나>를 보지 않는다. <사랑과 전쟁>이 철저히 현실적으로, 피해자 중심의 시각에서 제작되었다면 상기한 두 영화는 불륜을 동화만큼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게 그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출방식의 차이는 관객들이 감정이입을 하도록 만드는 대상의 차이를 만들고, 결과적으로는 이야기를 수용하는 방식의 차이를 가져온다. <닥터 지바고>나 2012년 이전에 만들어진 <안나 카레리나>들은 러시아라는 광활한 대륙을 뒤덮은 눈과 혹독한 추위 같은 배경적인 특성을 통해 불륜 당사자들의 고립된 상황을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하며 몰입을 돕기도 했다. 그런데 2012년판 <안나 카레리나>는 다르다. 모든 배경은 연극 무대를 표방한 작은 세트장으로 대체되는데, 이는 이야기의 도입부에서만 사용된 양념용 연출이 아니라, 영화 전체에 적용된다. <레미제라블>이 영화 속의 뮤지컬이었다면, <안나 카레리나>는 연극으로서의 영화다. 보통의 이야기들은 영화라는 매체를 통과하면서 감정이 걸러져 은막 바깥으로 흘러 넘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안나 카레리나>는 연극과 영화의 경계를 교묘하게 흐림으로써 과잉된 감정을 필터없이 관객들에게 전달하며, 영화적 과장도 시적허용을 감수하듯 받아들이게 만든다. 이러한 연출을 '인생은 전부 연극이다'라는 클리셰로만 수용하기에는 부족하다. 레오 카락스의 <홀리 모터스>처럼 한 인간의 삶을 통째로 무대위에 올려 놓고는, 그 무대 자체와 무대를 꾸미는 연출 따위를 부러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현실을 더욱 현실답게, 또 현실을 더욱 연극답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톨스토이의 소설을 읽었다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결말, 안나 카레리나의 죽음조차 탐미의 결과물이다. 그녀의 삶과, 그와 연결된 모든 불행들은 누군가의 희생으로만 멈출 수 있는 폭주 기관차와 같았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끝은 불륜녀에 대한 응징이 아니라, 더 아름다운 것을 위한 희생이었다. 처음은 빛났지만 점점 그 빛이 퇴색되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아름다움으로 지속시킬, 그런 끝맺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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