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짧은 역사에서 '링컨'만큼 이야기가 되는 지도자가 또 있을까? 모든 흑인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던 시절, '노예해방선언'이라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으며 그로 인해 남북전쟁의 중심에 선 인물이기도 한 에이브러햄 링컨은 위인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컨텐츠의 주인공으로 미국을 제외한 곳에서도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받아 왔다. 눈이 움푹 들어간 주름투성이의 얼굴을 뒤덮고 있는 수염과 커다란 키, 변호사 출신의 달변가라는 특징 역시 그를 기억하는데 주효하게 작용한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에게 굴지의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연달아 안긴 이 영화 <링컨>은 링컨의 이러한 내외적 특징은 물론, 남북전쟁 당시 노예해방이라는 대의를 위해 손에 피를 묻힐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에 대한 사실적 진술까지 겸하여 보여주고 있다.
역사 속 수많은 전쟁은 항상 대의의 달성을 위해 일어났다고들 한다. 인간이 점진적으로 진보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인간 스스로의 불신과 불안은 세상을 급히 전복시켜야만 한다는 믿음을 만들어 냈고, 결국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상당부분 바뀌지 않았을 것이 세상이기도 하다. 물론 이는 위험하게 곡해될 수도 있는 생각이기에 마냥 미화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사실 <링컨>은 결국 노예해방을 찬성한 쪽의 승리로 끝난 남북전쟁을 대의로 묘사하고 있는 영화다. 또한 그 대의를 이루기 위해 수반됐던 부정이 전쟁 뿐만 아니라 링컨 대통령(다니엘 데이 루이스 분)의 정치적 처세에도 있었음을 보여주는데, 이에 대해 영화 속 가치판단 역시 '어쩔 수 없이', '누군가는 해야만 했을' 등의 수식을 가능케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시각에 대해 달리 불만은 없다. 하지만 영화의 만듦새가 어쩐지 썩 만족스럽지는 않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이 이야기의 주요 내용은 남북전쟁이 발발 후 양측간의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을 때, 링컨의 북측에서도 노예해방 관련 법안에 대한 반대세력 때문에 13차까지 수정안을 내놓고 통과를 위한 물밑작업을 하는 과정이다. 이때 남측으로부터 종전 제안이 들어오는데, 그로 인해 여태 북측을 결속시키고 지탱해 오던 노예해방법안 통과라는 대의가 흔들리게 된다. 노예해방에 공공연히 반대해온 민주당과, 링컨의 편이지만 노예제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던 공화당 측은 모두 기득권이었기 때문에 노예해방을 찬성해도 딱히 이익이 아닌데, 남측의 제안으로 전쟁이 끝난다면 굳이 노예를 해방시킬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링컨은 남측으로부터의 교섭 사실을 숨기고, 민주당 측의 인사들에게 주요 직책을 미끼로 법안 통과를 위한 표를 줄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하나의 과정이 <링컨>의 러닝타임 150분간 계속되기 때문에, 긴장감이 떨어지고 지루한 느낌이다. 게다가 링컨의 대사들은 지나치게 선문답 형식이다. 주변인들과의 대화에서 링컨은 시종일관 뜬금없는 비유를 사용하는데, 이것이 나름대로 이어질 내용과 연관되어 해석할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책상에 앉아 노예해방법안을 통과시킬 궁리만 하고 있는 링컨의 비중에 비해 전쟁에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은 링컨이 느끼는 죄책감 정도로 등장하고,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잠깐 보여진다. 그런데다 링컨은 우습게도, 자녀 병역기피자였다. 조셉 고든 레빗의 팬들을 실망시킬 정도로 아주 잠깐 등장하는 링컨의 아들 로버트 포드 링컨(조셉 고든 레빗 분)의 군대 자원을 말리고, 결국 군인이 되겠다는 그를 전방과 멀리 떨어진 연락병으로 배치시키는 모습은 굳이 필요한 설정이었는지 의문스러웠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는 최고였다. 사실 개인적으로 영화의 퀄리티가 떨어지면 연기자들도 연기상을 받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링컨>을 통해 그러한 편견은 꺠졌다. 시나리오를 받은 순간부터 그 인물로 화(化)하는 메소드 연기로 유명한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링컨>에서도 완벽한 에이브러햄 링컨이 되어 있었다. 어중간한 미화와 늘어지는 연출에 스필버그 감독 특유의 영상미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영화였지만,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팬이라면 꼭 보아야만 할 영화임에는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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