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다크 서티>는, <코드네임 제로니모>나 <아르고>와 필연적으로 비교될 운명인 듯하다. 전자는 '오사마 빈 라덴 암살 작전'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다뤘고, 후자는 비슷한 시기에 CIA가 관련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리고 이러한 영화들은 공통적으로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허트로커>에서처럼, 은연중에 미국을 '정의의 수호자'로 미화한다. 작년 말 <아르고>를 보며 느꼈던 것처럼, 최근에 나온 이런 종류의 영화들은 더이상 이전처럼 미국을 강력한 패자로 그리지 않는다. 교묘하게 '작전 대상'들의 시점과 미국의 시점을 섞으면서, 미국 측의 행동에 녹아있는 그들의 논리를 보다 효과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영화의 정치적 연출에는, 마찬가지로 관객들의 성향에 따라 정치적인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기 마련이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미국을 '세계의 패자'에서 '정의의 수호자'로 색채를 부드럽게 바꿔 나가는 연출 방식의 경향 변화에 대해서 '영악하다'고 평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제로 다크 서티> 역시도 이와 같은 시점의 혼재를 보이지만, 다소 거친 방식이다. 911 테러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악의 축'이다. 그렇기에 그와 알 카에다는 절대악, 거기에 맞서는 미국은 절대선으로 그려내기에 매우 수월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선과 악의 구분에 있어서 '절대'라는 수식을 지운다. 알 카에다에 자금을 댄 '암마르'에게 자백과 관련 정보를 받아내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고문 장면은, 이번 아카데미에서 <제로 다크 서티>가 노미네이트된 분야의 수상 영예를 얻지 못했던 이유로 꼽힐 정도로 미국 패권주의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감독은 이처럼 고문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정당성까지 포기하지는 못했다. TV화면으로 전송되는, 오바마의 고문 행위 비판을 보고 '이제는 변호사 딸린 범인을 심문해야 한다'며 황당해하던 요원들의 모습은 고문 행위를 보고 그 폭력성에 불편함을 느끼던 사람들에게까지 그것을 '절대필요악' 정도로 여기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심지어는 선배의 고문 장면을 눈뜨고 보지 못하던 마야(제시카 차스테인 분)가 고문에 익숙해지다 못해 고문을 종용하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인다. 벤 애플렉이 <아르고>에서 보여 주었던, 체제 안에서 겪는 개인의 고민이나 갈등도 거의 다뤄지지 않은 채다. <제로 다크 서티> 안의 개인이란 테러의 희생자 혹은 '신과 조국의 이름으로' 테러에 맞서는 체제의 일원에 지나지 않는다. 부대 안에서 기르던 원숭이가 도망가려 했다며 모두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이제 더는 고문을 하고 싶지 않다'며 워싱턴으로 가서 사무직을 하겠다는 댄(제이슨 클락 분)의 결정은 너무나도 간단했고, 쉬웠다. 이쯤되면 이 영화는 트렌드에 걸맞게 가해자 시점과 피해자 시점을 교묘하게 섞는 연출을 한 것 같지는 않다. 맥락없이 많은 시점들이 얽혀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한 탓에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를 궁금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일상을 습격하는 테러 장면을 꽤나 많이 다루고 있는데, 호흡이 무척 길어 지루하게 느껴지며, 이러한 늘어지는 연출은 영화 말미의 마지막 작전 장면에서도 여전하다. 마야의 임무와 관련된 모든 조력들도 과정이 최소화된 채 결과만 제공되는 탓에, 그런 위기없는 상황에서 '타겟'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이 이상해 보일 정도다. 또 결정적 물증 없이 심증만으로 상부에 조력을 요구하는 마야의 행동은 가끔 억지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은, 사실 세계적으로 그렇게까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지는 못했다. 붙잡기는 점점 힘들어지지만, 또 시간이 갈 수록 중요도와 신선도를 잃어가는 '타겟'. 그래서 십여 년간을 끌어온 마야의 임무는 해가 지나며 그 순수성을 잃고 영화 홍보 멘트 그대로 '집념'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지루한 157분의 러닝타임을 견뎌내면, 마지막 장면에서 이 영화의 백미를 찾을 수 있다. 작전이 성공하고 '제로니모', 즉 오사마 빈 라덴의 사체를 확인한 마야의 표정이 바로 그것이다. <제로 다크 서티>에서 내내 홀대당했던 '개인'은 이 마지막 1분에 복권된다. 그러나, 이 1분을 위해 그 긴 시간과 정력을 써서 만들어진 영화라면 썩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제로 다크 서티>는 분명 비슷한 주제와 연출을 사용한 영화들과는 다소 다른 신선함을 갖고 있지만, 뻔함의 미덕이 필요한 영화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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