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앨런과 홍상수는 어쩐지 닮은 꼴이다. 어쩌면 홍상수가 우디 앨런을 벤치마킹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노골적인 남녀 관계의 묘사를 작품세계의 중요한 소재로 삼는다는 특징도 그렇고, 특정 지역을 전면에 내세우며 공간에 천착한다는 점도 유사하다. 이처럼 두 감독의 스타일에 공통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들을 풀어나가는 방식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그가 서촌이나 북촌같은 공간에 다소 어거지로 이야기를 밀어 넣으려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우디 앨런은 유럽의 유명한 도시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 자체를 이야기로 만든다. 우디 앨런의 영화에서 굳이 약점이라 부를만한 것을 찾는다면, 미국인으로서 유럽을 관찰하는 시각을 사용하는 탓에 그 지역에 대한 편견이나 일반화로 보일 수 있는 부분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감독은 노련하게도 오히려 그러한 시각들을 웃음 코드로 승화시킨다. 이를테면 은퇴한 오페라 감독으로 등장하는 제리(우디 앨런 분)는 딸 헤일리(알리슨 필 분)의 애인 미켈란젤로를 만나러 이탈리아로 온 후, 장의사 일을 하는 미켈란젤로의 아버지가 성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제리가 미켈란젤로의 아버지에게 끊임없이 데뷔를 권유하고 거부당하는 장면에서, 우디 앨런은 장삿속에 밝은 미국인의 특징을 드러내며 행복을 추구하는 유럽인들의 특징을 부각시킨다. 이 모든게 편견이고, 일반화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지만, 영화 안에서 자연스럽게 웃음을 유발하는 장치가 되는 것이다.
영화는 로마에서 벌어지는 네 줄기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로마 위드 러브>에서 로마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배경이 되기도 하고, 그 안의 사는 인물들의 특징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베를린>이 굳이 베를린이었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면, <로마 위드 러브>는 로마였기에 더욱 재미있는 영화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처럼, 감독은 본인이 생각하는 도시의 이미지가 환상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그래서 이야기는 유쾌해진다. 그 안에 사는 이들은 사실 타국에 사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지만, 그 바깥의 우리는 한번쯤 떠나보고 싶은, 일탈을 꿈꾸는 곳으로 여기는 그 공간을 동화 속의 성처럼 그리며 특별하게 만든다. 동시에 그 '동화 속 성'같은 곳에서 어딜가나 비슷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웃음을 주는 능력이 탁월하다. '진짜 사람 사는 이야기'라는 식상한 표현이, 이 영화에야말로 적확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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