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사정으로 끝내 20살을 맞이하지 못한 아이들을 제외한다면, 모든 사람은 반드시 '10대'라는 특수한 시기를 보내게 된다. 이제 10대보다 30대와 더 가까워진 나는 종종 10대로, 하다 못해 갓 10대를 벗어났던 스무살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주변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냐고 한다면 의외로 거의 그렇지 않은 편이었다. 그 시절을 생각하기도 싫은 때로 기억하는 이도, 재미있었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하는 이도 있었다. 기억은 대개 미화된다고들 하지만, 다시 10대가 되었으면 하는 나도 차마 아름답게만 돌아볼 수 없는 일들이 그 때에 분명 있었다. 몸은 이미 어른이 되었지만, 누구도 어른이라 불러주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른'이라는 존재를 궁금해 했고, 동경했다. 우리의 시작점이 사회적으로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식했고, 대신에 그 방향이라면 바꿀 수도 있다는 원대하지만 비현실적인 희망을 배웠다. 기껏해야 일이천명 남짓의 아이들이 모인 학교라는 소사회에서, 우리는 '어른'으로 향하는 힘겨운 여정을 경험했다.
1980년 미국의 예술학교를 배경으로 했지만, <페임>이라는 이야기는 지금 한국의 10대의 이야기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빈부귀천과 인종을 가릴 것 없이 학교에 모인 아이들이 겪는 다양한 갈등 상황들이 공감을 자아낸다. 10대라는, 인생에서 가장 무르면서도 단단하여 모순적인 시기는 그 고유의 특성 탓에 여과되지 않은 감정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더욱 깊은 몰입을 가능하게 한다. 예술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는 본래 인간에게 주어진 개성의 존재를 한층 더 부각시키고, 갈등 극복의 단초로서 다소 전근대적인 느낌을 줄수도 있는 꿈에 대한 열정을 제시하기 수월하도록 돕는다. 사실 <페임>의 결말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다를 바 없다. 영화 속 모든 갈등들은 벌어지기만 한 채 해결된 것은 없지만, 입학부터 졸업까지 다양한 곡절을 겪은 학생들이 졸업식장에서 한데 모여 공연을 하는 모습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하지만 이 결말은 주인공들과 관객을 향해 활짝 열려있다. 주인공들은 그로써 또다른 시작으로 나아갈 여지를 얻고, 관객들은 그들의 힘겨웠던 청춘을 위로하고 응원할 수 있는 것이다.
<학교 2013> 속 아이들의 이야기도 <페임>과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여기에 덧붙여 <학교 2013>는, 특히 나이테가 20개 미만이라는 이유만으로 얻는 면죄부와 주홍글씨에 대해 꼼꼼히 짚어낸다. 몸과 생각이 '어른'보다 더 자랐을지라도 결코 어른이라 불릴 수 없는 존재들은 나이의 주박으로부터 일탈을 꿈꾼다. 이 이야기 속 '오정호'라는 인물은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가장 트렌디한 캐릭터인데, 10대에게 '보호'의 명목으로 가해지는 억압적인 면들을 탈피하기 위해 비행(非行)을 저지르는 점이 고전적이라면 이전보다 강화된 '보호'의 손길을 이용해서 어른들이 자신의 불량한 행동들을 멈추지 못하도록 만드는 영악함을 보인다는 점은 시류를 정확히 읽어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학교 2013>의 결말이 최선이자 최고였던 이유는, 이 '오정호'라는 캐릭터의 이야기를 끝맺지 않고 열어두었기 때문이었다. 이 드라마의 주요 인기 요인은 '박흥수'와 '고남순'이었지만, 마치 <다크 나이트>의 조커처럼 내러티브 전체를 짊어진 악역으로서 '오정호'보다 더 중요한 캐릭터는 없었다고 본다. 점점 변화하는 오정호의 모습, 종례를 끝내지 않은 채 오정호를 기다리는 선생님의 모습이야말로 <학교 2013>이 시청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월플라워>도 식상하리만치 익숙해진 청춘드라마의 공식을 답습한다는 점은 위의 두 작품과 같다. <페임>이나 <학교 2013>과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있다면, 이 영화는 경험의 습득을 주로 다뤘다는 점이 그렇다. <월플라워>는 이야기의 끝까지 완벽한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찰리(로건 레먼 분)'가 자신들을 '불량품들의 섬'이라 칭하는 친구들을 만나 사랑과 우정 등을 '처음으로', '배워 가는' 과정을 그린다. 대학 입시라는 인생의 첫 성취로 가는 여정에서 찰리에게 모든 것이 새롭다. 찰리가 익명의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내며 그의 속마음이나 내러티브를 부연하는 형식의 내레이션은, 영화가 끝으로 갈수록 그 편지의 발신자도 수신자도 찰리였음을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이렇게 세상으로 던져져 내가 아닌 다른 것들과 마주하기 전, 자신과 대화하는 모습은 <안네의 일기> 속 '키티'와 대화하는 '안네 프랑크'의 모습과도 같았다. 찰리와 친구들이 스스로의 무한함을 느끼는 장소가 터널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몇 갈래로 한정되어 있는 길을 제시당하고, 세파에서 보호받으며 어른들이 켜 놓은 빛을 사용하지만, 언젠가는 스스로 빛이 없는 넓은 도로로 나아가 후에 갈길을 선택해야만 할, 누구에게나 주어진 그 운명 속에서 그들은 무한한 내일을 보는 것이다. 한편 <학교 2013>이나 <페임>에서처럼 <월플라워>의 그들 역시 대마초나 술같은, 금지돼있고 현실을 마취하는 것에 손을 대며 거기서 한순간의 일탈을 꾀한다. 재미있는 것은 <페임>과 <월플라워>에서 모두 이러한 일탈의 일환에서 <록키 호러 픽쳐쇼>를 다뤘다는 점이다. 양성애자이자 복장도착자인 외계인 프랭크 N. 퍼터의 기괴하지만 어떤 기성질서에도 구애받지 않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해방감이 그들에게는 필요했기 때문이리라.
<월플라워>의 패트릭(이즈라 밀러 분)은 그와 친구들을 둘러싼 갈등을 바라보며 "Why can't we save anybody?"라 한탄한다. 그때의 우리는, 우리가 정말 무한할 것이라고, 고통받는 이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왔지만, 패트릭처럼 그 믿음들이 잘게 부서지는 좌절을 경험했다. <월플라워>에서 찰리가 겪은 이모와의 일이 끝내 드러나지 않은 이유는, 타인의 고통을 완벽히 이해할 수도, 대신 짊어질 수도 없다는 '어른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자신도 쉽게 구할 수 없는데, 누구를 구원할 수 있을까.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슬프지만 우리는 어른이 된다. 하지만 그렇게 어른이 된 그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을 것을 믿는다. 구원이 아무리 신의 영역이라고 해도, 우리는 서로를 내버려둘 수 없기에 인간이라는 사실을 이미 배웠기 때문이다. <학교 2013>의 강세찬(최다니엘 분) 선생이 오정호에게 매달리는 정인재(장나라 분) 선생에게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거라면 그만 손을 놓으라'고 말했으면서도 자신이 오정호의 손을 놓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타인의 10대 이야기에서 배워야 할 것은, 그런 어른이 되는 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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