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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터 스켈터, ヘルタースケルター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속 골드문트는 이렇게 말한다. 여성으로서 겪을 수 있는 최고의 고통인 출산의 순간 짓는 표정과, 여성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의 얼굴은 닮아 있다고. 그의 말처럼 쾌락과 고통은 어쩌면 쌍둥이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결핍과 욕망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그것을 메우는 방법으로서 쾌락을 추구하게 된다. 고통을 느끼는 순간이야말로 쾌락이 필요한 순간이며, 그렇기에 쾌락과 고통은 선악과 같이 분명한 구분을 할 수 없는 감정이다. <헬터 스켈터>의 리리코(사와지리 에리카 분) 역시, 웃음과 비명이 같은 것이라 말한다. 원래의 자신 위에 모두의 욕망을 덧칠해 만들어진 리리코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결핍이며 동시에 쾌락이며, 그녀의 말대로 웃는 얼굴로 비명을 지른다.


<헬터 스켈터>는 인기를 위해 전신성형을 한 연예인의 몰락 과정을 그리는 단순한 내러티브를 보여 준다. 감독이 데뷔작 <사쿠란>에서 보여줬던 색채의 활용이나 자극적인 설정들이 욕망과 쾌락의 강렬함을 비유한다. 솔직한 말로 이 내러티브를 진행하는 데서 불필요한 부분이 지나치게 많아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지친다'는 느낌이 지배적이다. 특히 설교조의 대사를 일삼는 검사의 존재는 사족 그 자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권선징악류의 뻔한 이야기를 뻔하게 마무리하지는 않는다. 리리코는 이 영화에서 욕망의 화신이자 악마처럼 그려지지만, <헬터 스켈터>가 끝으로 갈수록 감독은 애초에 그녀와 그녀가 하는 행위에 선과 악같은 상반되면서도 간지러운 가치판단을 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리리코가 그대로 추락했을지, 아니면 '타이거 릴리'의 현신으로서 새로운 비상(飛上)을 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온전히 관객의 몫이다. 우리는 이미 인간이라는 존재가 온전히 천사일수도, 악마일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대중이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과, 다양한 모습의 권력을 쥔 막강한 개인이 대중에게 가하는 폭력은 다른 모습이 아니다. 점점 복잡해져만 가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방향으로 떠내려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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