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되어버린 옛사랑만큼 현실적이면서도 아름다울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까?
옛사랑이 '추억'이라는 다른 이름을 갖는 이유는, 대부분의 경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추억의 무덤에 박제시켜 놓도록 만든 것은 현실이다. 사랑이라는 절대적 가치로도 극복할 수 없었던 그 냉혹한 현실 탓에 영원의 약속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사랑이야기들은 결국 미완으로 끝난다. 한편 그처럼 아쉽게 끝나 버렸기에 한없이 아름답게 채색되는 것도 추억으로 변한 옛사랑이다. 완성되지 못한 채로 끝났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없는 이런 이야기들은, 당사자들로 하여금 상상으로라도 그것을 완전하게 만들고 싶어지도록 한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기에 또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지라도 오랜만에 마주한 추억의 얼굴이 사랑했던 그 날들처럼 여전히 아름답기를, 사람들은 바란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가 시즌 2의 마지막 화에서 빅과 헤어진 후 다른 여자와 약혼을 하는 그에게 이 영화 <추억>의 마지막 대사를 읊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사랑해도 헤어질 수 있다면 헤어져도 사랑할 수 있잖아'.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면 누구도 정확한 헤어짐의 원인을 알 수 없는 그런 둘만의 사랑은, 끝났지만 끝난 것이 아니다.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이나 짝사랑의 기억들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리고 지난 사랑이 아름답게 기억될수록, 다음 사랑은 다른 모습으로 아름답게 빛난다.
세계적으로 반전 시위가 일어나고 매카시즘 광풍이 불던 그 시기, 모든 것이 진지한 여자 케이티(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분)와 모든 것이 꼭 진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남자 허벨(로버트 레드포드 분)이 만난다.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꿈꾸던 케이티는 우선 자신과 주변의 행복을 생각하던 허벨에게 첫눈에 반하지만, 처음에는 허벨이 케이티의 진중함을 이성적 매력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를 붙잡고 싶었던 케이티는 곱슬거리던 머리도 펴고, 치가 떨리게 싫어하던 헐리우드 스타일의 가벼운 농담도 웃어넘기면서 원래의 자신을 하나하나 지우고 그 빈 곳에 허벨을 채워 넣는다. 그녀가 그렇게 사라져가는 스스로의 공간을 허벨의 삶과 꿈으로 메우고 있는 사이에, 허벨도 어느새 그녀의 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서로 사랑하게 된 그들의 행복한 삶은 영원할 듯했지만, 결국 '허벨의 여자'나 '케이티의 남자'로만은 살 수 없었던 그와 그녀는 끝내 사랑을 포기하는 편을 택했다. 크게 부푼 곱슬머리를 풀썩거리며 허벨과 사랑하기 전의 자신으로 돌아간 케이티와 참한 생머리의 여자를 만난 허벨이 우연히 마주쳤을 때의 쓸쓸한 눈이 아직 그들 사이에 사랑이 남아있음을 말하고 있었지만, 케이티와 허벨은 등을 돌려 각자의 길을 걷는다. 케이티 역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부른, 영화와 동명의 주제곡 <The Way We Were>가 돌아선 그들과 그들을 갈라놓은 세상을 조감으로 비춘 화면 위로 흐르며, 케이티와 허벨의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관객이 들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끝이 난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영화 밖에서도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이 영화의 강점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애절한 연기와, 적확한 시대상의 캐릭터화였다. 얼마 전 보았던 <로얄 어페어>는 시대적 배경을 강조했으면서도 그 안의 개인에게 시대상을 녹여내지 못한 탓에 이도저도 아닌 불륜 이야기가 되고 말았지만, <추억>은 당시의 사회적인 대립을 개인사에 온전히 투영해냈다. 거시적 고민과 미시적 고민이 각각 배경과 캐릭터로 화(化)한 덕에 사랑만으로 해결될 수 없었던 그들의 헤어짐은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마치 목숨이 다해 가듯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사랑은 끝났다. 하지만 케이티와 허벨은 서로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고, 그 사실이 기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하며, 그렇게 추억의 끈으로 이어져 있을 것이다.
終わるはずのない愛が途絶えた 끝날리가 없는 사랑이 끝났어요
いのち盡きてゆくように 목숨이 다 해 가듯이…
ちがうきっとちがう 心が叫んでる '그것과 달라! 분명히 달라!'라고 마음이 외치고 있어요…
ひとりでは生きてゆけなくて 혼자서 살아갈 수 없기에
また 誰かを愛している 또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어요
こころ哀しくて 言葉にできない 가슴이 슬퍼서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LaLaLa… 言葉にできない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せつない噓をついては いいわけをのみこんで 슬픈 거짓말을 하고는 변명을 삼키며
果たせぬ あの頃の夢は もう消えた 이루지 못한 그 시절의 꿈은 이미 사라졌어요…
誰れのせいでもない 누구의 탓도 아니에요
自分がちいさすぎるから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기에
それがくやしくて 言葉にできない 그게 분해서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LaLaLa… 言葉にできない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あなたに會えて ほんとうによかった 그대를 만날 수 있어서 정말로 좋았어요
嬉しくて嬉しくて 言葉にできない 기뻐서, 기뻐서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LaLaLa… 言葉にできない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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