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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1

아무르, Amour



조르주(장 루이 트랭튀냥 분)가 다급히 수전을 돌리고, 물이 쏟아진다. 잠가둔 수도꼭지를 풀자 해방된 물처럼 안느(엠마누엘 리바 분)의 육신은 흘러서 수챗구멍으로 점점 빨려 들어간다. 가까스로 수전을 잠그고 다시 스스로를 붙잡은 안느는, 태어난 순간부터 조금씩 녹아 내리기 시작한 자신의 심신이 더이상 녹을 수 없을 만큼 조금 남아있다는 사실을 수용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런 안느를 바라보는 조르주는 그 변하지 않는 현실이 그녀에게 버겁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어 한다. 조르주는 그렇게 안느의 수전을 꼭 잡고 한 방울의 그녀도 흘려 보내려 하지 않지만, 이미 고장나버린 수도꼭지를 타고 안느는 계속 흘러 내린다. 벽에 걸린 그림처럼 함께 정물이 되어가던 노부부의 삶에 끼어든 병이라는 사건은 당연하기 때문에 더 슬프다.


<아무르>는 세계 어느 곳, 어느 시각에나 볼 수 있는 흔한 이야기다. 젊은 시절도 자식들도 다 떠나 보내고 서로만을 의지하며 행복하고 소소한 황혼을 즐기던 노부부의 일상에 배우자의 병마가 도사리며 재앙은 시작된다. 스러져가는 육신을 타인의 손에 맡길 수 밖에 없는 수치심과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이 바라보기만 해야하는 안타까움은 만국공통의 애수다. 뻔히 대강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은 극중인물들에게 깊은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늙음과 한 쌍인 죽음 앞에서 모든 인간은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슬프고, 슬픔은 짜증과 분노로까지 번진다. 결국 자신의 손으로 안느의 수전을 끝까지 풀고 만 조르주의 마지막 선택마저도 공감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천하의 미하일 하네케라도 <아무르>를 특별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이런 류의 이야기는 여느 사랑 영화처럼 천편일률적으로 흘러가다가도 어느 순간 특별해지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처절한 신파를 연출하는데 있어서 감독은 거장으로서의 노련함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쇼트의 강약을 길이로서 조절하고 내러티브의 생략에 있어서도 빈틈을 느낄 수 없게 만드는 탁월함은 마치 교본과도 같았다.


삶의 모든 사건과 기억들은 마당을 통한 창으로 들어오는 비둘기와 같다. 뜻밖의 순간에 찾아 오고, 또 사라진다. 그리고 사라졌다가 다시 찾아 왔을 때는 익숙해져 그것을 붙잡고 싶어진다. 삶은 조르주가 두 번째로 집 안에 들어온 비둘기를 붙잡으려 고군분투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조르주가 어려운 듯 쉽게 붙잡은 비둘기는 안느와 함께 볼 수 없었고, 그는 결국 비둘기를 날려 보낸다. 안느의 말처럼 인생은 길다. 그리고 우리가 잡아야 할 비둘기도 많다. 나만의 비둘기말고, 너와 함께 잡을 비둘기는 얼마큼일까. <아무르>는 너와 내가 함께 마주했으면 하는 모범적이고 아름다운 늙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절대로 너와 내게는 없었으면 하는 비극도 보여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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