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도 <가위손>은, 주인공의 그림자에 특히 감독의 모습이 아른거렸던 영화였다. 대놓고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고 했던 영화도 있었고, 은근하게 그것을 느끼도록 했던 영화도 있었지만,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절로 주인공의 상(像)위로 감독이 겹쳐 보였던 적은 없었다. 심지어는 팀 버튼 개인의 역사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아는게 없는데도 말이다. 어수룩하고 평범하지 못한 겉모습 탓에 뭇사람들에게 '미완성인 인간'으로 백안시당했던 삶, 하지만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능력이 있었던 감독 자신이 에드워드라는 캐릭터로 화(化)한 듯하다. 이런 느낌을 받게 됐던 건, 가위손에 대한 절절한 애정이 스크린 밖으로 느껴질 정도로 넘쳐 흘렀기 때문일 것이다.
팀 버튼의 영화를 볼 때마다, 그야말로 소위 '키덜트'의 원조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작품은 항상 동화같다는 인상을 주지만, 그저 비현실이기만 한 동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화같은 현실'이라는 느낌을 준다. 'Childish'와 'Childlike'의 모호한 경계를 극복하고 현실과 동화-비현실-의 간극을 교묘히 허문다. 비유하자면,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옥수수 곳간에 수류탄이 떨어지자 그것이 폭발하며 팝콘으로 터져 나오는 장면에서 받는 느낌과 유사하다. 현실 범위 내에서 동화적인 설정들이 비현실의 이질감을 지워낼 정도로 디테일하게 들어가면서 남녀노소 모두의 감성을 아우르는 미학적인 연출을 해 낸다. 그런 장면들을 볼 때마다 '영원히 철들지 말자'는 나의 신념을 다시 한 번 굳게 다지게 된다. <가위손>의 말미에 할머니가 된 킴(위노나 라이더 분)이 손녀에게 가위손의 이야기를 해 주면서, '그가 오기 전에 이 마을에 눈이 오지 않았지만, 그가 오고 나서 부터는 눈이 오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장면은 너무나도 귀여우면서도 짠해서 절로 눈물이 돌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박찬욱의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팀 버튼 생각이 나곤 한다. 특히 박찬욱 자신만의 영화 속 세계를 구축할 때 선보이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디테일한 설정 위로 팀 버튼이 겹쳐 보인다. <가위손> 속 예쁜 원색으로 채색된 마을과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의 화려한 정신병동들을 보며 나는 두 감독들의 미묘한 공통점을 보았다. '예쁜 것'에 대한 오롯한 집착 때문에 이 두 감독은 세상으로부터 무던히도 '괴짜'라 비웃음당했을 것이다. 그들은 자타칭 미완성이지만 사실은 완성형인 에드워드의 현신이다. '영원히 철들지 않을', '순진하진 않지만 순수한' 팀 버튼과 박찬욱이 만든, 그리고 앞으로 만들 예쁜 영상들은 계속 '내 인생의 영화' 목록에 랭크될 듯하다.
'ARCHIVE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라이프 오브 파이, Life of Pi (5) | 2013.01.03 |
---|---|
바람의 검심, るろうに剣心 (0) | 2013.01.03 |
파우스트, Faust (0) | 2013.01.02 |
아무르, Amour (0) | 2012.12.31 |
미스터 나이스, Mr. Nice (0) | 2012.12.29 |
레미제라블, Les Miserables (0) | 2012.12.21 |
돼지우리, Porcile (0) | 2012.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