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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렉 : 다크니스, Star Trek : Into darkness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괴물을 만든다'고 토니 스타크도 말했지만, 그가 말했던 괴물은 한편으로는 '영웅'이라 불리는 존재와 거의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막대한 부, 엄청난 능력, 고귀한 혈통, 비범한 외모 등등 모든 면에서 일반인을 뛰어 넘는 그들은, 각자가 믿는 '정의'에 따라 움직인다. 아니, 어쩌면 괴물과 영웅은 동일한 존재로, 세상이 그를 원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서 이름을 달리하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정의와 그들의 정의가 일치할 때만, 그들은 '영웅'으로 호명되는 것이다. 그리고 범인(凡人)인 우리들은, 괴물이든 영웅이든 그런 존재를 원한다. 우리의 정의를 그들에게 투영하여 대리만족하거나, 그들의 정의를 악으로 상정, 집단공격하여 이쪽의 정의를 강화하는 용도로 그들을 소비한다. 손가락이 아프도록 인용하게 되는 <슬레이어즈 TRY>의 에이션트 드래곤이 대표적인 예다. 현대에 들어서는 슈퍼 히어로나 로봇 등의 형태를 사용, 그들을 더욱 초현실적이고 인공적인 존재로 만들어 왔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나 <건담>시리즈가 그러했고, <아이언맨>시리즈에서는 영웅 특유의 혈통 판타지가 재벌 판타지로 옮겨가는 양상도 보인다. 그렇다면, <스타트렉 : 다크니스>의 '칸(베네딕트 컴버배치 분)'은 괴물일까, 영웅일까?


'칸'은 전투를 위해 유전자를 변형하여 만들어진 강한 육체를 지니고 있지만, 연방 측에게 이용당하며 스스로 동족들을 동결시켜 어뢰 안에 보호한다. 그러나 그 어뢰마저도 연방이 보유하고 있는 상태. 연방의 마커스 제독(피터 웰러 분)은 그 어뢰를 이용하여 클링온과의 전쟁을 일으키려 하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 스타플릿을 향한 칸의 '1인 (폭력)시위' 도중에 파이크 함장(브루스 그린우드 분)이 죽고, 마커스 제독은 칸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는 커크(크리스 파인 분)의 '엔터프라이즈 호'에 어뢰를 실어 그것으로 '칸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스타트렉 : 더 비기닝>에서도 볼 수 있는, 상반된 성격의 커크와 스팍(재커리 퀸토 분)이 교감하고 서로에게 감화되는 과정이 여기서 빛을 발하는데, 이전같으면 복수를 위해 칸을 죽였을 커크가 칸을 생포해 지구로 데려가 재판을 받게 하겠다고 선언한다. 마커스가 파놓은 함정에 결국 클링온의 영역에서 교전을 벌이게 되고 그 자리에서 칸의 항복을 받아낸 커크는 엔터프라이즈호에서 숨겨져 있던 칸의 진실과 마커스 제독의 음모를 듣게 된다. 커크가 칸을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커스 제독은 엔터프라이즈 호를 공격하고, 칸과 커크는 힘을 합쳐 마커스를 제거한다. 하지만 칸의 분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칸'은 <스타트렉 : 다크니스>에서 <은혼>의 야토족이 소비되는 방식과 비슷하게 그려진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전투력을 지니고 있는 그들의 몸에는 태생적으로 호전적인 피가 흐른다. 야토족의 최강자 '우미보우즈'는 그 능력을 사용해 우주 전역의 악행들을 진압하지만, 그의 아들 '카무이'는 자신이 최강자가 되겠다는 일념 하에 강자들을 찾아다닐 목적으로 우주해적에 가담한다. 우미보우즈의 딸이자 카무이의 동생인 '카구라'는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의 파괴력을 사용해 무언가를 지키는 방법을 배울 목적으로 지구에 오지만, 그 엄청난 능력을 야쿠자의 세력다툼에 이용당한다. 이 야토 가족은 모두 각자의 정의를 위해 움직이지만, 누군가는 영웅 대접을 받고 누군가는 피에 미친 살인귀 취급을 받는다. 강인한 육체와 타고난 전투력은 야토족에게, 칸에게 세상으로부터 싸우기만을 요구당하게 만든다. 칸도 처음에는 그를 영웅으로 부르는 이들에게 둘러싸여 칭송받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영웅으로 대접해주었던 이들은 칸이, 야토족이 자신들의 입맛대로 움직이지 않았을 때 가차없이 괴물이라 부르며 공격했다. 그래서 전투종족으로 태어난 이들은, 괴물 취급하기에는 불쌍한 존재들이었다.


<스타트렉 : 다크니스>는 단순한 오락영화라고 부르기에는 대단히 치밀한 플롯을 자랑한다. 스코티(사이먼 페그 분)가 커크와 다투고 엔터프라이즈호에서 내리지 않았다면, 엔터프라이즈호는 마커스 제독의 공격에 우주의 먼지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파이크 함장이 죽는 순간 스팍이 그의 생각을 읽지 않았다면, 스팍은 자신이 억지로 제어하고 있던 감정의 존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계기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스타플릿이 그저 전쟁을 위한 집단이었다면, 마커스 제독이 클링온과 싸우기 위해 음모씩이나 꾸미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에이브럼스 감독은 관객이 가질 수 있는 거의 모든 'If...'라는 추측에 대한 인과관계를 일말의 의구심도 들지 않도록 제시한다. 현재는 아직 불가능한 기술적/과학적 비약도 납득가능한 수준이다. 또한 <스타트렉 : 다크니스>는 이처럼 치밀한 드라마 구성에도 불구하고 시각적인 즐거움 역시 확보하고 있다. 같은 SF라도 작년 개봉한 리들리 스콧의 <프로메테우스>와는 스케일부터가 차이난다. 이 영화의 시각적 백미는 초반부 화산 폭발을 막기 위해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외계행성에 갔을 때(두번 봤는데 두번 다 화살 피했음 보면 알것임)와 우주에 떠 있는 엔터프라이즈호의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다. 이런 점들만 봐도 에이브럼스 감독의 SF장르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못매남의 대명사 베네딕트 컴버배치 역시 특유의 저음과 외모로 슬픈 악당 '칸'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냈다. 이처럼 <스타트렉 : 다크니스>는 가련한 괴물 '칸'의 이야기와, 커크의 감정을 배워가는 스팍과 스팍의 이성을 배워가는 커크의 성장 이야기를 절묘하게 버무려낸 수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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