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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 민즈 워, This Means War

좋은 영화를 고르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 아니, 그렇게 좋고 나쁨을 힘주어 말하기에는 영화라는 장르가 다소 주관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좋은 영화'라기 보다는 '취향인 영화'를 고르는 기준이 있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감독이 표방한 장르에 충실하게 들어맞도록 만들어졌는지의 여부가 그 기준인데, 장르특유의 형식을 신선하고 재미있게 풀어나가면 으뜸이겠지만 드라마면 드라마, 스릴러면 스릴러, 느와르면 느와르 같은 장르에서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시도들이 보여지는 것들을 못 견디는 편이다. 결말이 빤하더라도 정석적인 포맷 안에서 최대치의 재미를 제공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한다. 올해 본 영화로 얘기하자면 <다크 나이트 라이즈>보다 <맨 인 블랙>이, <화차>보다 <간기남>이 더 좋았다고 느꼈던 것처럼. 언급한 영화들은 모두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내러티브와 일정 수준의 비도덕적인 면이나 정치적 후진성을 보이고 있지만, 그것에 딱히 이의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촘촘한 진행 방식을 구현해낸 것은 장르의 범위를 지키며 어쭙잖은 철학을 섞으려 들지 않은, 후자의 영화들이었다. 감독이 모종의 장르를 표방하고 나선 이상, 그 장르를 지나치게 어긋나는 행보를 보이는 것은 어느 정도 기대를 하고 본 관객에게 민폐가 아닌가. 특히 '킬링타임용'이라고 불리는 오락 영화에 있어서, 오락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죄악이다. 그런 의미에서 <디스 민즈 워>는, 더없이 장르에 충실하면서 스타일리시한 영상미까지 살려낸, 빼어난 오락 영화였다.


진짜 자신을 숨기고 살 수 밖에 없는, 절친 사이인 두 명의 CIA 요원들이 한 여자를 두고 벌이는 촌극을 주요 스토리로 하는 이 영화는, 내러티브에서 무엇을 부각시켜야 하고 무엇에 소홀해도 좋은지를 정확히 파악한 영리함을 보여 준다. CIA 요원이라는 신분을 가족에게까지 숨겨야 했고 그래서 결국 가족과 헤어지게 된 터크(톰 하디 분)라는 캐릭터 안에 얼마나 구태의연한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상 그가 마땅히 가질 법한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나 국가의 필요에 희생된 개인의 문제같은 것들은 이 영화 속에서 최소화된다. 대신에 천하의 난봉꾼이지만 정말로 사랑하는 대상은 아직 만나본 적 없는 프랭클린(크리스 파인 분)과 남자를 따라 LA까지 왔지만 그의 외도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외로운 커리어우먼 로렌(리즈 위더스푼 분)과의 삼각관계에서 난무하는 각종 수작질들이 가볍고 유쾌하게 그려진다. CIA의 화려한 최신장비들을 이용해서 로렌을 도청하고, 그녀의 신상을 모조리 파악해 내며, 데이트를 추적하지만, 이를 민간인 사찰로 보고 불편해 할 관객은 0에 수렴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언피씨한 설정들을 코믹하게 녹여냈다. 이제는 진짜 사랑을 찾고 싶어하는 세 남녀의 고민은 너무 심각하게 표현되지 않은 덕분에 더욱 몰입과 공감을 가능하게 한다. 이야기가 심각해질 수록 문제는 더욱 캐릭터의 내면으로 침잠하고, 특수해지지 않던가. <디스 민즈 워>는 이처럼 세상이 뒤집어질 사건이 발생해 스트레스 받을 일 없이, 시종일관 무겁지 않은 분위기를 유지한다. 로렌에 완벽히 감정이입해서 두 훈남 배우와 아기자기한 연애를 상상하는 것도 이 영화의 주요한 재미요소다. 안정적이고 착하지만 너무 우직해 보이는 남자와, 연애에 능숙한 바람둥이같지만 진지할 때는 진지한 전형적 나쁜 남자, 이 둘 사이에서 한 명을 선택해야 하는 행복하지만 복잡한 상황은 그야말로 천편일률적이지만 언제 보아도 진짜 내 일이었으면 하는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게다가 주인공들의 직업 특성상 가미되는 액션씬은 상당히 스타일리시하기까지 했다. 가벼운 이야기에 각종 추를 달아 무겁게 만들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가벼움을 유지하는 감독의 명민함과 배우들의 명연기 덕에, <디스 민즈 워>는 결말까지 군더더기 하나 없는 좋은 오락 영화였다는 평가를 아깝지 않게 했다.


post script. porn lips가 괜히 porn lips가 아니지.. 내 안의 리비도를 날뛰게 하는 톰 하디.. 바보같은 웃음도 매력쩌렁쩌렁.. 흑흑.. 더리쎾씌의 정석이야 오빠는.. 마취총 씬이랑 드라이브 중에 카메라 부수는 장면이랑.. 프랭클린 여자손같다고 놀릴때의 오빠는 짱이어씀요..


post script 2. 여자 주인공이 좀더 예뻤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느낌은 지울 길이 없다..


<삽입곡 목록>

01. It Ain't Over - Southpaw Swagger
02. Leave It To Me - Martin Perkins
03. Just For You - Mr Lonesome and The Bluebelles
04. Look Sharp! - Joe Jackson
05. Human Qualities - Explosions in the Sky
06. Me So Horny - 2 Live Crew
07. Unstoppable - The DNC Featuring Yoni
08. 2am - Slightly Stoopid
09. Sabotage - The Beastie Boys
10. This Is How We Do It - Montell Jordan
11. How You Like Me Now - The Heavy
12. Smooth Operator - Sade
13. Rose's Theme - James Horner
14. Repetition - Willowz
15. Art & Music: Klimt - Music of His Time
16. Shake It, Shake It - Ted Caplan
17. Soft Bossa - Giacomo Bondi
18. New Girl - The Lions
19. The Song I Wrote For You - Greg Holden
20. Touch The Ceiling Fan - Thunny 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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