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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를 위한 슬픈 발라드, The Last Circus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많은 비극을 만들어낸 서사야말로 '복수'일 것이다. 서커스처럼 위태로운 복수의 외줄 위에서 한번도 아이일 수 없었던 하비에르는 광대와 괴물 사이를 어지럽게 방황한다. 또다른 복수만이 구원이 될 수 있는, 복수의 시대를 밟아온 사람들은 과연 종국에는 구원을 얻을 수 있었을까? 차라리 슬픈 광대의 얼굴로 복수의 사슬더미를 짊어진채 살려던 하비에르는 복수심으로 인해 괴물이 되어 가는 사나이, 세르지오와 마주친다. 우습게도, 세르지오가 복수하려는 대상은 자신을 광대로 만든 세상이었다. 광대로도, 괴물로도 살아낼 수 없는 세상에서 하비에르가 가장 쉽게 찾을 수 있었던 구원의 대상이 세르지오의 여자였던 나탈리아였다. 공교롭게도 나탈리아 역시 괴물이 되어가는 세르지오를 두려워했기에 하비에르에게 기대려 하고, 하비에르는 그것이 세르지오를 더 끔찍한 괴물이 되게 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녀의 접근을 거부하려 하지만 결국은 그녀를 사랑하게 된 자신을 발견한다. 나탈리아를 공유할 수 없었던 그들은 결국 피를 흘리게 되고, 두 남자는 모두 괴물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실 세르지오와 하비에르는 괴물이 되지 않으려고 광대의 길을 선택했었다.

완벽한 괴물이 되기 위해서는, 슬픈 광대의 얼굴도 기쁜 광대의 얼굴도 지워야 한다. 세르지오와 하비에르의 얼굴은 표정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진채 그들에게 가해진 복수와 폭력의 운명을 그대로 담아낸다. 그렇게 괴물이 된 광대들이 벌이는 복수의 서커스를 바라보는 서커스 단원들의 표정은 차라리 연민이다. 가장 강하고 두려운 모습의 괴물은, 사실 가장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괴물이 될 수 밖에 없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복수심은 그들의 힘이었다. 총에 장전된 총알이었고, 손에 들린 칼이었다. 나탈리아의 허리를 두른 구원의 붉은 천을 붙잡기 위해 싸우지만, 그 모두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죽는 것만을 바라보며 삶을 달릴 수 밖에 없는 가장 약한 존재들이 살기 위한 방식이야말로, 복수 그 자체였다. 상처를 입으면, 그대로 상처를 돌려주어야 하고, 그러면 상대는 또 그 상처를 돌려준다. 그 반복적인 희생에 기대지라도 않으면, 그들은 살 수 없었던 것이다.

구원이라 믿었던 나탈리아가 사라졌어도, 복수의 붉은 천은 여전히 십자가에 얽혀 늘어져 있었다. 결국 아무도 편해질 수 없는 삶. 복수하도록 만든 사람이 복수당하고, 또 거기서 복수심을 불태운 사람이 복수하고, 그렇게 피의 복수가 이어지는 것이다. 끊을 수 없는 복수의 연쇄의 끄트머리에서, 웃는 광대였던 세르지오는 다시 만면에 웃음을 띄우고, 슬픈 광대였던 하비에르는 눈물을 흘리며 절규한다. 괴물이었던 그들은 그 순간만이라도, 괴물이 되기 전의 자신들을 재현하며 그들이 연기하는 마지막 서커스의 막을 내린다.

그 어떤 호러물보다 이 영화가 두려움으로 다가온 것은, 인간의 내면을 가장 사실적인 방식으로 직유했기 때문이었다.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복수의 본능을 이렇게 리얼하게 바라보는 동안, 그것이 내 안에도 있으며, 이 역사를 결코 끊어낼 수 없다는 것,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아직도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