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에 대하여>는, 적어도 내가 본 영화 중에서는 모성신화를 부정하는 거의 유일한 영화다. 우리는 본의 아니게 태어나는 것도 모자라, 성별을 결정할 자유를 갖지도 못한다. 나는 그렇게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여자로 태어났다. 여자로 태어났다는 것은, 선천적으로 육체에 생명을 몸 안에 품어 키우는 하나의 '기능'이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본능적으로' 그녀의 안에서 자라 나온 생명이 잘 자라도록 책임지고 싶어한다는 환상, 이 두터운 속박에 묶여버리고 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직도 나에게 작은 아이란 것은 애완 이상의 개념이 아니다. 그저 보고 있으면 귀여울 따름이다. 낳아보면 다를 것이다? 정말 다를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나는 아이를 낳는 엄청난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것일까?
한 생명을 온전히 책임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라고 말하고 싶다. 인류는 겨우 십몇년간을 제 몸 바깥으로 나온 유전자의 확대판을 마음대로 주무르다가 그것이 곧 반항을 하기 시작하며 결국 자신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 준 토양을 배반하고 돌아서는 것을 손놓고 바라보는 역사를 되풀이해왔다. 그래서 청년이 되어 독립한다는 것은, 또다른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온전한 자아가 확립되어서가 아니라, 더이상 자신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부모에게서 버려지는 일인 것이다. 나의 부모도, 그의 부모도, 또 그의 부모도 그렇게 살아 왔다. 고작 이십년 혹은 삼십년을 살아온 남자와 여자는 아이를 만들면서 암묵적 성년의제를 받는다. 설사 그 이상의 연식이 된 인간이라 한들, 사회가 정해놓은 육아법이라는 매뉴얼에 따라 아이를 세상이 요구하는 어떤 것으로 만들어 내놓는 것 이외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인류는 영원히 그들이 말하는 '어른'에 닿을 수도 없고, 자기 이외의 누군가를 완벽히 책임진다는 것 역시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런 환상 속에 사는가? 케빈의 말대로, 여기에 이유가 없는 것, 그것이 이유다.
생각지 못했던 임신에 기쁨과 두려움을 동시에 띄우는 틸다 스윈튼의 연기는 훌륭했다. 부른 배를 가만히 쓸어보는 손은 다정하지만, 낯빛은 어둡다. 하지만 그녀의 뱃 속에서 나온 케빈은 차라리 하나의 악마였다. 남편까지도 도와주지 않는 그녀의 육아피로는 고스란히 전달되지만, 어쩐지 케빈을 미워할 수 없다. 그가 하는 행동들을 이해할 수 없지만 인정할 수는 있었다. 이유가 없는 것이 그를 움직이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의 모든 끔찍한 만행들은, 왜 그랬는지 아는 줄 알았었는데 사실은 잘 모르겠는 것들이다. 가족은 화목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 부모의 말을 잘 듣고 동생을 잘 돌봐야 한다는 것, 다른 사람들을 슬프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 사람을 죽여서는 안된다는 것과 같은 성경에나 나올 법한 덕목들, 그 사회적 합의들을 그저 따르지 않은 것 뿐 아닌가. 케빈의 존재, 그것의 근원이라는 이유로 어머니는 남은 삶을 지옥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어머니를 손가락질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은 영화 속 모든 슬프고 괴로운 일들이 사실 어머니 때문에 일어나지 않았음을 인정하기가 싫다. 심지어는 당사자인 어머니조차도. 우리는 그런 속박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속박의 올가미가 극적으로 표현되는 연출은, 힘든 그녀의 모습과 함께 깔리는 정답고 경쾌한 음악이다. 그녀의 인생이 힘들든 말든 그 바깥은 소름끼치도록 평화스럽다는 사실을 그 몇몇의 음악들로 구현해낸다. 의도된 평화는 그것을 마음대로 두려워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케빈은 그의 본성대로 살았다. 그래도 그가 십수년을 살아오며 '인간'이라는 것을 자신 안에 담았다는 증거는 그게 진실이든 거짓이든 어머니와 처음으로 교감하던 순간 어머니가 읽어 주었던 '로빈 후드'가 그의 책상 선반에 항상 올려져 있었다는 것, 그가 그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혹은 권태를 극복하기 위해 사용했던 도구가 아버지의 선물인 활과 화살이었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본성을 긍정한 죄로 감옥에 갇히고 머리를 빡빡 밀린 케빈과 어머니는 서로를 진심으로 끌어 안는다. 그것은 더이상 어머니가 아들을 품는 제스쳐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간의 포옹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영화관을 나온 후에도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니, 이제는 받아들여라. 우리는 그럴 수 있다.
post script. 노콘돔 노쎆쓰
post script 2. 이즈라 밀러 흑발과 검은 눈동자가 너무 섹시하네요
왕자님 아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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