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만대의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는 '섹스''비디오테이프'가 왕성히 유통되던 구십년대 말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거짓말'로 인해 벌어지는 촌극으로, 스티븐 소더버그의 동명작품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남한에 위기가 생기면 국회의사당 뚜껑이 열리면서 태권브이가 나온다는 도시전설같이, 청계천에는 전설의 의협객 개천이 형님-혹은 오라버니-이 세운상가의 상인들을 보호해왔다는 거짓말이 '형수'의 립스틱 빨갛게 발린 입술을 통해 전래되고 있었다. 그리하야, 작은 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평범한 중년의 여자같지만 실은 청계천 섹스비디오산업의 중심이자 돈의 흐름을 틀어쥐고 있는 '형수'와, 이렇다할 히트작 없이 형수에게 돈을 땡겨 쓰다가 에로영화계를 뜨기로 작심한 '경태', 그리고 자신이 주연인 에로영화를 찍어 마카오에 가져가 한탕 하고자 하는 '주리'를 중심으로 시간상으로나 공간상으로나 세기말의 데카당스가 만연한, 구십년대 말 복개된 상태의 청계천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그려낸 이 영화는 덮여있던 청계천의 겉옷을 벗겨내는 듯한 아찔함을 선사한다.
지금은 나신이 된 청계천을 그리워하는 일종의 기록극같지만, 감독은 그 당시의 '섹스'산업이나 '그 매체인 '비디오테이프'보다는 '거짓말'에 방점을 찍는다. 그 거짓말이 빚은 촌극의 결말은 누구에게는 비극일 수 있고 누구에게는 희극일 수도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유쾌하다. 신기하게도, 이 영화 안에는 어떠한 '얼룩진' 욕망도 보이지 않는다. 하루하루 제리를 쫓는 톰처럼 경태에게 돈을 받으러 다니는 고리대금업자가 보이는, 제대로 에로영화를 찍어보겠다는 경태의 부탁에 자기의 세단을 선뜻 내어주는 의외의 호의나, 에로영화산업이 부국강병을 위한 국책사업이라는 '형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경태 수하의 에로배우가 가진 어눌하면서도 절대적인 신뢰는 악귀의 욕심이라기보다는 자신의 터전, 청계천의 몰락을 두고볼 수 없는 최소한의 방어 수준인 욕심이다. 그러한 소시민들의 소소한 욕심들이 '형수'가 짠 매트릭스, 거짓말 속에서 대략 판타지로, 코미디로 재구성되는 것이다.
주리 역에 티나를 캐스팅한 것은 의외로 절묘했다. 처음에는 너무 강남여자같이 생기지 않았나.. 했는데 은근 꾸미는대로 고전적인 에로배우 느낌이 나더라. 발연기스러운 말투도 그냥 원래 그 여자 말투일 것 같이 자연스러웠고.
스러져가는 청계천 세운상가의 영화가 극중인물 각각의 마지막 모습들로 은유되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마치 열린 결말같아 보이지만, 분명한 온점을 찍은 닫힌 결말이었다. 실로 봉만대의 작가주의가, 영화를 매듭짓는 곳까지 빛난 작품이었다.
post script. 아아.. 심재균의 극중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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