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 보는 것을 상상하고 있을 것이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옛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내 것이 아닌 무언가의 대한 소유욕과 호기심이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상상을 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하다. 인생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갈림길에서 인간은 반드시 선택을 해야 하고, 선택받지 못한 쪽은 고스란히 '가지 않은 길'로 남는다. 만일 이 길이 아닌 그 길로 갔다면 어땠을까? 인간의 삶은, 그래서 필연적으로 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상상력을 동반한다.
<빅 픽쳐>의 주인공인 폴(로망 뒤리스 분) 역시 현재의 완벽해 보이는 삶을 완성하기까지 다양한 갈림길 앞에 섰을 것이다. 그때마다 폴이 했던 선택들은 현재의 폴, 성공한 변호사와 단란해 보이는 가정의 가장인 그를 만든 한편으로 어릴적부터 폴의 꿈이었던 사진작가와 영원히 식지 않을 애정으로 아내와 백년해로하는 남편으로서의 그는 폴이 지나온 시간속으로 매몰됐다. 폴의 아내 사라(마리나 포이스 분)는 이미 폴과의 가벼운 모닝키스조차 피할 정도로 그에게 마음이 떠난 상태다. 사라는 폴이 결혼 이후 여자로서의 그녀보다 자기 아이의 엄마, 한 가정의 구성원으로서만 그녀를 대한다 느꼈고, 이웃의 사진작가 그렉(에릭 루프 분)과의 불륜으로 마음의 허함을 채운다. 그렉과 사라 사이의 묘한 기운을 눈치챈 폴이 그들을 추궁하지만, 사라는 이혼을 요구해 오고, 그렉은 오히려 당당하다.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폴과 그렉은 몸싸움을 벌이고, 사고로 그렉이 죽게 된다. 폴은 순간, 인생에서 가장 선택이 힘든 갈림길 앞에 섰음을 깨닫는다. 폴이 선택한 길은,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서 지우고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그렉의 삶을 사는 것이었다. 사진작가를 자처했지만 재능이 부족했던 그렉의 이름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폴은 그간 취미의 영역에 가려 두었던 창작욕을 맘껏 표출한다. 얼마간 그렉의 인생을 대신 사는 길을 걷던 폴은 사라에게 모든 것을 고백해보려 하지만, 다시 이 길을 나오기에 폴은 이미 그 안으로 너무 깊숙이 들어온 상태였다. 그래서 그는 끝까지, 그렉의 인생이라는 길에서 주어지는 갈림길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우여곡절 끝에 엄청난 유명세를 치루게 된 폴은 도피를 위해 탑승한 배에서 일어난 엄청난 범죄 현장을 카메라에 담게 되고, 가까스로 죽다 살아난 그는 타인의 이름을 빌어 그 사진을 언론에 공개한다. 먼 발치에서 공개 현장을 보며 짓는 폴의 미소는, 그가 했던 모든 선택들의 책임을 담고 있는 듯 묵직하지만, 끝내 그는 행복해졌음을 보여 준다.
<빅 픽처>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선택의 순간, 특히 어느 길로 가더라도 손해를 보는 갈림길과 마주했을 때의 심리를 한 인간의 인생역정에 빗대 탁월하게 묘사한다.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덕에 내러티브도 탄탄하고, 흡입력이 강하다.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는 없는 이야기지만, '인생'안에 내포된 불확실함은 <빅 픽처>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어느 각도에서, 어떤 사람이 감상하느냐에 따라 다른 해석을 낳으며, 하나의 '순간'을 붙잡아 이야기를 담아내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중요한 장치로 삼은 설정 또한 신박하게 다가온다. 사진을 찍는 순간도, 보는 순간도 우리는 선택과 마주하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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