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대전Z>라는 소설의 영화화 판권을 두고 브래드 피트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접전을 벌였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우리는 응당 브래드 피트의 <월드워Z>에 대해 무한한 기대감을 품을 수 밖에 없다. 헐리우드의 정점에 서 있는 배우들이 욕심내고 직접 주연까지 맡은 좀비물은 과연 어떻게 뽑아져 나올까? 아싸리 이전의 좀비물들처럼 스케일은 작더라도 B급 정서로 갔다면, 브래드 피트의 망가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그도 나름대로 흥미로웠을 것이다. 아니면 헐리우드의 자본력으로 엄청난 스케일과 흠잡을 곳 없는 CG를 자랑하면서 다소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로 갈 것인가? 이역시 신선한 선택지이기는 하다. 그러나 <월드워Z>는 이 두 노선의 단점만을 종합한 듯한 아쉬운 결과물을 보여 준다. 이 영화는 '좀비물'이라기보다는, '재난물'에 가깝다. UN 소속 조사관 출신으로 뛰어난 위기 대처 능력을 보여주는 주인공 제리(브래드 피트 분)는 당연하다는 듯이 '인류의 희망', '비밀병기' 같은 영웅으로 군림한다. 게다가 브래드 피트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답습해 온 마초 가장 컨셉도 그대로라, 캐릭터에서 느껴지는 신선함도 없다. 연출 면에서는, 이미 좀비 영화의 클리셰가 된 초반부의 건물 탈출 장면은 얀닉 다한과 벤자민 로체르의 <호드>가 곧바로 연상될 정도로 식상하다. 그나마 이스라엘에 쌓아둔 거대한 방벽에 좀비떼가 달라붙는 장면이 이 영화에서 기대했던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하지만, 이조차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로 충분히 봐 왔던 느낌의 연출이었다. 백신을 구하기 위해 WHO 건물에 잠입하는 장면에서는 <데스노트 L : 새로운 시작>이 보인다. 이런 탓에, 브래드 피트의 열혈 팬이 아니라면 사실 <월드워Z>를 굳이 봐야 할 이유를 찾기 힘들다.
그렇다면 내러티브라도 단순하게 만들고, 대신에 자잘한 설정들로 납득 가능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좀비물 덕후들의 마음이라도 사로잡아야 했다. 하지만 중구난방으로 쏟아지는 설정들은 마무리까지 어설퍼서 감독의 편집 실력을 의심하게 한다. 원작 소설이 높은 평가를 받았던 주요 원인이었던, 섬세하고 전문적인 국제 정세 풍자 역시 뻔한 은폐와 극한상황에서의 이기심 정도로 일차원적이다. 원작대로 '전후 보고서'를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내어 다큐멘터리의 느낌을 주었다면 이러한 졸작은 나오지 않았을까? 마치 드라마 <풀하우스>가 원작의 주요 설정과 제목만을 따 와서 원작 팬들의 원성을 샀던 상황을 보는 느낌이다(풀하우스는 흥행에 성공하기라도 했다!). 원작에서 묘사된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주는 대신에 주인공 제리의 영웅담을 풀어놓는데 그친 <월드워Z>는, 좀비물로도 재난물로도 실망스러운 수준을 보여 주었다.
p.s. 한국 팬들이 많이 기대했을 평택씬은 마케팅면에서도 영화의 완성도 면에서도 가위질을 했어야 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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