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원 감독의 <명왕성>을 '수작'이라고 하기엔 모자라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안그래도 뻔한 이야기를 뻔한 방식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그저 '뻔한 이야기', '저예산 독립영화' 특유의 정서를 답습만 하고 있는가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태양계의 마지막 행성이었지만 학계에서 '태양과 너무 먼 거리', '질량 부족' 등으로 퇴출당한 '명왕성'을 이야기로 치환해낸 센스는 가히 남달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배경인 '세영고등학교'는 하나의 소우주다. '태양'과 가까울수록, 태양이 요구하는 일련의 조건들을 충족할수록 태양처럼 빛날 수 있다 배웠고 그리 믿는 세영고등학교의 작은 행성들은 힘겹게 태양의 곁을 맴돈다. 그들은 태양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애쓰지만, 영화 속 준(이다윗 분)의 고백처럼 '지는 백미터 달리기'를 하는 패배감을 맛봐야만 했다. 앞에서 쌩쌩 달리는 주자들의 등은 '명왕성들'에게는 단단하고 높은 벽과도 같다. 어른들은 '태양'을 꿈꾸라고, 노력하면 '태양'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리고 언젠가는 명왕성도 태양계에 다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믿지만, 그 희망의 문은 너무나도 좁기만 하다. 명왕성의 슬픈 운명을 알고 있기만 한다면, 그것을 영화의 소재로 녹여내는 것은 어쩌면 어렵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가족드라마에 울고 웃듯이 그 '뻔함'에 공감한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며 함께 보여 주는 수능풍경의 애절함과 간곡함이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영화제 개봉 당시에는 이 수능풍경이 인트로로 들어갔다고 하는데, 엔딩크레딧과 함께 올린 것이 훨씬 잘 된 편집이었다는 느낌이다.). 누구나 그 풍경 속의 주인공이었던 시절이 있기 때문에, 눈물은 한 줄기로 흐르더라도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정은 굉장히 복잡하다. 그 감정들은 <명왕성>의 등장인물에 대한 연민, 현실의 학생들에 대한 연민, 그 시절을 지나온 나 자신에 대한 연민과 분노와 좌절 등 매우 다양했다.
'누가 이 아이들을 괴물로 만들었는가?' 최근 영화계의 트렌드를 지배하는 화두와도 같은 명제다. 비단 성년이 되기 전의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떠오르는 질문만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난제의 원인도, 해결책도 희미하게나마 알고 있지만 선뜻 그 답을 외친다거나 행동할 용기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괴물'이 되어버린 후에도 끝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한명호(김권 분)의 모습에 분노보다는 불쌍함이 느껴진다. 조금 좋은 머리와 부모의 재력 외에는 손에 쥔 것도 없고 그것을 '잘 쓰는' 방법을 배우지도 못한 한명호의 생존 방식이 '토끼사냥'일 수 밖에 없었던 것 자체를 다그치기는 힘들 것 같다. '토끼사냥'은 그야말로 그들의 '생존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이 모두가 잘못된 것일까? 고문실에 난 자그마한 창으로 들어오던 한줄기 빛마저도 개기일식으로 가려질 때, 준은 다시는 나올 수 없는 블랙홀에 제발로 걸어 들어간다. 명왕성의 노래를 듣기 위해, 태양계에서는 명왕성에 불과했던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그가 스러질 때의 마지막 노래, 그 폭발음조차 관객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지만, 대신에 그가 빠져들어간 암흑을 잠시 경험한다. 그리고 마음 속에서 울리는 명왕성의 노래, 준의 노래, 그리고 우리의 노래에 잠시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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