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칠일을 찻집에 나와 잘 마시지도 못하던 커피에 냉수를 부어 마시기 시작한 후로부터, 그 전보다 더 남의 삶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 '일주일에 칠일'이란 것이 대개 혼자 보내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뒤적거리거나 글을 쓰는 그 모든 시간에도 묘하게 내 귀는 열려 있었던 것이다. 흑석에 앉아 있으면 옆테이블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북한이며 통진당을 들먹이며 정치얘기를 하고, 율전동 성대 앞의 파스쿠찌에는 연인들이 많아 소소한 일상 얘기를 하면서 투닥거린다. 압구정에 가면 아저씨들이 어젯밤 끼고 놀던 아가씨 이야기를 하고, 동네 카페에 가면 아줌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남편 욕을 한다. 나는 혼자 내 일을 열심히 하는 척 하면서, 그들이 하는 말들을 주워 듣는다. 요즘 기름값이 삼천육십오원쯤 되서 남자들도 차를 잘 타고 다니지 않더라는 터무니없는 말을 지적해주고 싶어지기도 하고, 운전면허시험이 유월에 형식을 바꾼다고 하더니 아직 바꾸지 않았더라는 말에는 그거 올해 십일월에 바꾸니 하루 빨리 따시라고 오지랖을 펄럭이고 싶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닥 남들에게 미친 사람으로 보여지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에, 조용히 웃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로 만족한다. 나의 삶도 남의 삶도, 모조리 한편의 소설같아진다. 하루종일 혼자 있을 때면 나에 대한 공상-이를테면 눈여겨 봐 두었던 인터넷 쇼핑몰의 옷들을 입은 상상을 한다든가-에, 마치 사해에 몸을 담근 것처럼 거기에 빠져 둥둥 떠다니던 생활에 남의 삶이 불순물처럼 끼어든다는 것은 생각만큼 결벽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읽은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 <여학생>은, 남의 입을 통해 하는 내 얘기, 아니, 남이 대신 해 주는 내 얘기가 아니라 온전히 남의 얘기이지만 내 얘기와 똑같은 그런 얘기여서 나는 책에 줄을 지어 인쇄된 기호들의 나열을 꾹꾹 눌러 내 안으로 흡수하듯이, 그렇게 읽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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