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도리가 한가하면 심장이 게을러져."
대놓고 섹스코미디를 표방한 영화 중에-특히 한국에서-대중적으로도 성공을 거둔 영화가 있었을까?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섹스 자체를 다룬 영화들은 실제 극장 관람객수와 파일공유사이트의 엑기스 영상 다운로드 수가 비례하지는 않았다. 봉만대 같은 걸출한 에로영화 감독이 있기는 하지만, 그가 만든 베드신들은 대중적 정의로서의 '예술'로 받아들여지지는 못했다. 한국영화에서 섹스란, 연인 간의 사랑을 확인하는 마지막 의식이나 막간 눈요기와 같이 내러티브에 뿌려지는 '양념'에 그쳤던 것이 사실이다. 아무리 킬링타임용 상업영화라 할 지라도, 감히 섹스를 전면에 내거는 모험을 했던 영화는 극히 드물었다. 섹스를 세수로, 가슴을 슴가로 바꿔 부르듯이 성을 영화로라도 즐기는게 아직 불편하고 남사스러울진대, 무려 폰섹스라니? 이 영화의 제목 역시 <나의 폰섹스 파트너>가 아닌 <나의 PS 파트너>다. 영화홍보는 'PS'가 'Phone Scandal'이라고는 하지만, 사람들은 킬킬대며 '폰섹'을 수군댄다. 제목이 말하고 있듯, 이 영화는 유명 배우들을 주연으로 내세운 주제에 용감하게도 '섹스'란 간판을 달고 영업한다. 그리고 개봉 첫날이기는 하지만, 그 영업은 실패하지 않을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하고 싶다. 조오심스레..
귀띔하자면 사실 엑기스로 편집될 영상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신에 픽픽 새는 웃음이 아닌 빵빵 터지는 음담패설들이 있다. 살색 영상보다는 살색 농담들이 난무한다. '현승(지성 분)'과 '윤정(김아중 분)'의 친구들은 코미디 영화의 조연으로서 역할을 완벽히 수행했다. 그들이 주고받는 섹드립들은 현실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누는 것이었기 때문에, 관객들이 이 이야기를 현실 그 자체로 인식하기에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 영화의 볼거리는 의외로 시적인 영상편집이었다. 전화상으로 연결된다는 것은 상대가 촉각으로 닿아오지 않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거리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러한 매체적 특성을 이용해 현승과 윤정이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했을 때는 외려 가까운 느낌을, 얼굴을 보고 직접적으로 교감을 하고 난 후 정말 정분이 나버릴까 두려워하는 상태에서는 곁에 있더라도 멀어 보이도록 거리감을 조절하는 편집은 주인공들의 물리적 거리가 아닌 감정의 거리를 절묘하게 표현해 냈다.
윤정은 사랑노래가 지겨워 부르기도 싫다. 그야말로 이 세상에는 지겨울 만치 사랑이 범람하고 있다. 게다가 모든 사랑 이야기는 주인공만 바뀐 채 설레고, 반하고, 사귀고, 싸우고, 헤어짐을 반복할 뿐이다. 하지만 사랑이 아무리 감당이 안 될 정도로 흘러 넘친다고 해도 포인트는 주인공이 전부 다른 인물이라는 데 있다. 공식이 아무리 뻔해도, 모든 연인들이 같은 추억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들의 사랑은 '사랑'이란 거대한 집합 속에 속해 있을 뿐 그 사이에 교집합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연인에게 바치는 러브송이라는 흔해 빠진 방식을 빌렸더라도 현승과 윤정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사랑 노래는 '그들만 부를 수 있는 노래'였다. 바람핀 애인 '성준(강경준 분)'을 버리는 모험을 하지 못하는 자신을 그저 흔한 여자라고 말하는 윤정이지만, 폰섹스로 맺어진 사랑이 어디 흔한가?
사랑은 그렇게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야기에 어떤 비약이 있더라도, 있을 법한 이야기로 다가온다. 그 이야기가 섹스타령이건, 시궁창같은 현실 타령이건, 어떤 이야기에서도 사랑을 제외시킬 수는 없다. 모든 것은 사랑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사랑 이야기, <나의 PS 파트너>에 공감하고 웃을 수 있다. 우리의 삶이란 '공수래공수거(空手來 空手去)'가 아니라, '애수래애수거(愛手來 愛手去)'인 것은 아닐까? 그러니 섹스 코미디에 베드신이 적다고 노여워 하지 말고, 부디 그 뻔함을 즐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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