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깡패종자들 때문에 왠만하면 블로그에 유명인 등의 실명을 밝히지 않고 애둘러 쓰는 편인데 오늘은 정말 지극히 개인적인 소회를 풀어내는 글을 쓰고 있기에 필요한 이름들은 그냥 쓰기로 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내게도, 이거야말로 분명히 '이디오진크라시'가 아닐까, 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너무나도 고질적이어서 도무지 고쳐 볼(?)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 인간에 대한 '막연한' 기대다. 그래도 인간세상에 이십육년 정도를 살아보니 그 기대의 견고함이 약간은 연해지기는 했지만, 그것의 팔할 정도는 마치 무의식 속에 있는 것처럼 나 자신조차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그런 상태다. 특히 인간이 분명 설득의 동물일 것이라는 기대는, 그것만큼 허망한 것이 없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매주 로또를 사듯이 모든 인간에게 예외없이 적용하고 말아버린다. 심지어는 내가 여지껏 그런 기대를 하고 있었음을 깨달은지도 얼마 되지 않을 만큼 그것은 이미 인이 박혀버린 내 일상이다. 인간세상은 나를 설득하지 못하는 주제에 여러 가지를 강요해왔고 나는 소극적이긴 해도 나름대로 설득과 반항을 했었다. 그래서 내가 완전히 반골이다, 이런 얘기는 아니고, 나역시도 인간의 기준으로 이야기를 할 뿐이다. 여기에 '닥치고 그냥 해'라는 답변이 돌아오는 상황은 오히려 낫다. 누구도 설득하고, 설득당하려는 의지 없이, '내 생각은 내 생각, 네 생각은 네 생각'이라 말하며 그냥 찢어지자 한다. 그런 제스쳐는 상대방의 의견을 독립적으로 존중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귀찮고 댁을 설득할 논리도 모자라 이대로는 내가 질 것 같으니 그냥 갈길 갑시다, 이런 따위의 도피지 않은가. 수도 없이 그런 상황에 부닥치면서 그 단단하던 기대의 벽이 물러지는 것을 보고도 어쩐지 당연하다고 여기는 내가 외려 싫어져버리곤 한다.
그래서 나는, 위의 기대와 비슷한 맥락으로, 여전히 무의식의 영역에서 이런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일종의 구루가, 믿을만한 어른이 존재할 것이라는 기대까지도 병행하고 있었다. 초등교육과 중등교육을 받으며 부모와 선생에 대한 그 기대를 강제적으로 깨게 되면서, 나는 당연한 수순처럼 대학과 교수들에게 그 기대를 옮기고 있었다. 오백점 만점인 수능시험에 사백팔십점 이상은 맞아야 쓸 엄두를 낼 수 있는 서울대에 그렇게도 목을 맸던 것도 분명 내 자존심 역시 작용했을 테지만 거기엔 정말 최고들이 있겠지, 그런 마음도 지지 않게 컸던 것 같다. 그러나 기대가 해를 거듭하며 불어나 그게 붕괴할 때의 데미지가 컸던 건지 아니면 그놈의 고등교육이란 것이 중등교육만 못한 것이었는지, 나는 어른이고 자시고 인간이란 것이 애초에 기대할 가치가 없는 존재가 아닌가 싶기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빛나던 내 우상들이 고작 일이년의 세월을 전후로 내 안에서 퇴색해가는 모습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는 나의 이십대 초반에 내멋대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삼았던 영준비마저도 영원히 그런 존재로 남아주지는 않았다. 그런 때의 감정들은, 이를테면 뭐 이런거다. 비 오는 날 도로가에 서서 버스를 기다릴 때 인도에 붙어 달리는 차가 내 옷에 구정물을 튀길 때 이런 씨발 하고 화를 내지만 멀찍이 달리는 차의 바퀴에서 안개처럼 고운 입자로 흩어지는 물방울을 보거나 얼굴에 살짝 맞을 때 뭔가 잠깐 비오는 날의 감성에 젖었다가도 그게 똑같은 구정물이란 생각에 그 감상에서 확 벗어나 다시 병신같은 나를 탓하게 되고 마는 그런 느낌.
그러다가 나는 드디어 평생 믿을만한 어른으로 남아 줄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안겨준 사람을 만나고야 말았다. 그게 진중권이다. 그의 수업을 듣기 전에 그를 전혀 모르던 것은 아닌데, 뭐 별나게 관심가질 의지는 생기지 않았었다. 그러나 수업시간에 그가 지나가듯이 했던 말에 나는 그냥 이 사람이야말로 내가 그렇게 그리던 믿을 만한 어른이 아닐까, 아니, 그런 어른이 맞다고 생각하게 됐다. 당시 중앙대, 한예종, 카이스트에서 강의를 하던 그는 자신이 그곳에서 강의를 하던 이유를 설명하며 자신의 비전을 살짝 내비쳤는데 그렇게 무심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 신이 나서 말하는 모습은 물론이고 그 순수하고도 분명한 사상에 나는 그에게 평생을 충성해야 겠다고까지 다짐하게 된 것이다. 훗날 진중권이 중앙대 교수임용에서 탈락하고나서 마지막 강연 후에 뒷풀이 비스무리한 것을 했었는데 그의 앞자리에 앉아 있었던 나에게 칼라tv였나 누군가가 들이댄 마이크에도 나는 기꺼이 바로 어제 있었던 일처럼 그날의 얘기를 주워섬겼었다. (그날 그에게 편지까지 썼던 것은 내가 좀 비밀로 하고 싶었지만 손이 오그라들어 턱으로 타자를 치는 한이 있더라도 다 털어내기로 한다) 그는 그 후로도, 그 자체로 동경과 존경을 바칠만한 존재였다. 총선과 같은 몇몇 핫이슈에서 살짝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길래 그가 총기를 좀 잃었구나, 했지만 금세 회복하리란 아주 굳건한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 며칠간 그는 결국 나를 배신했다. 자타칭 진빠 1호인 한윤형과 정말 무의미한-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안이라는 점에서-설전을 벌이더니 결국 블록으로 귀를 닫아버리고 마는 그를 보며 농담이 아니라 그간 내가 바쳤던 순정은 뭐였나 싶어졌다. 그도 그렇고, 지금의 나도 만족스럽지 않지만 나역시 그처럼 나이가 들고 나면 어쩔 수 없이 변해버리고 마는 것인가, 싶은 두려움까지 들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은 나는 그가 변해버린 이유를 찾다 못해 나이 탓이라도 하고 싶은 거였다. 뭔가 이유가 없으면 나는 더욱 그를 참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애써 나이와 세월과 홍진의 때에 애먼 죄를 씌우고 나서도 나는 아직 마음이 편치 않다. 정말이지 내게는, 이제 믿을만한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더이상 그를 믿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 진중권, 그는 좋은 진중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