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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2

아이돌의 의의? :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

인간이 만든 모든 발명품들은 예외없이 그 기원에 나름의 필요성을 갖고 있다. 남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고 마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는,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할 필요성과 동시에 남보다 강한 몸을 원하게 했고, 이러한 필요들은 무기를 탄생시켰다. 또한 인간은 발화와 동시에 휘발되어 버리는 말을 기호화할 목적으로 문자를 발명했으며, 그것들을 종이 위에 붙잡아 보존하고 싶다는 필요에 의해 활자를 만들었다. 하지만 '발명품'의 영역에 이처럼 물질적인 형태로 가시화된 것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모종의 연대와 결속을 위해 국가와 민족이 만들어졌고, 여성을 가족에 묶어둘 구실로서의 모성이 개발되었으며, 각종 '이즘'과 '올로지'라는 발명품이 인간의 사상을 객관화한다. 이처럼 인간은 어떠한 필요와 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해 물질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비물질적인 영역에서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발명해 온 것이다.


이러한 발명품 중 현대에 와서 특히 그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 엔터테인먼트, 즉 오락이다. 보다 이전의 삶이 오락적인 부분의 배제를 요구하고 사회적으로도 이를 천시하는 분위기였다면, 그렇게 쉼없이 달려와 오늘을 일궈낸 현대인에게 오락만큼 중요한 가치도 없을 것이다. 실제로도 엔터테인먼트 시장은 날로 몸집을 불려가고 있다. 스스로 오락의 주체가 되기에 너무 바쁜 이들을 위해 엔터테이너라는 직업이 탄생했고, 이들은 엔터테이너가 되지 못하거나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는 이들을 대신해 각종 오락 콘텐츠들을 만들어 판다. 그렇게 대중은 엔터테이너들이 내놓은 콘텐츠를 각자의 취향에 따라 소비하는 것이다. 그러한 취향의 수가 대중의 영역에 포함된 사람 만큼 방대하다고 해도, 이를 연결하는 하나의 코드가 분명히 있다. 나는 이것을 '섹시함'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회화된 취향을 갖고 있더라도, 그 근간에 존재하는 가장 본능적인 끌림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야말로 '섹시함'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가령 소녀시대의 <GEE>라는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이때, 소녀시대의 우아한 각선미를 좋아하든 그녀들의 입에서 나오는 노래를 좋아하든지간에 그것을 소비하는 주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바라마지 않는 모습에 끌린다. 즉 엔터테이너 그 자체를 소비하든 엔터테이너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소비하든 그 콘텐츠들의 섹시함이나 거기서 비롯되는 판타지 등의 이미지를 소비한다는 점은 같다는 말이다. 대중들은 스스로가 섹시하다고 생각하는 콘텐츠에만 지갑을 연다. 


이처럼 팔리는 콘텐츠는 섹시하고, 섹시한 콘텐츠는 팔린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역사에서, 특히 성적인 판타지가 강조된 콘텐츠가 바로 아이돌이다. 아이돌의 어원이 '우상'에서 온 것은, 다른 면보다 아이돌 그 자체를 판매할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종교를 소비할 적에, 신의 말씀 이전에 신의 존재 자체를 섬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예외도 있지만, 아이돌이 대부분 2인 이상의 그룹 형태로 조직되는 것은 대중에게 소비의 다양한 선택지를 주는 것이다. 첫 접근방식이 어찌됐든 아이돌의 팬들은 결국 자신의 입맛에 따라 고른 아이돌에게 애정을 쏟게 된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 외모가 훌륭한 사람, 춤을 잘 추는 사람,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람, 섹시한 사람, 심지어는 어린 사람 등 대중의 다양한 이상형에 부합하는 인물들로 구성된 아이돌의 소비코드야말로 '섹스 판타지'의 충족이다. 그/그녀와의 연애하고 섹스하는 상상을 하지 않더라도, 아이돌을 소비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중은 스스로의 성적 환상 혹은 이상형을 충족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은 아이돌의 팬임을 감추기 위해 '일반인 코스프레'를 한다. 아이돌이라는 콘텐츠에 내재된 섹스어필의 의도를 애써 못본 척하고 '엄마의 마음으로', '삼촌의 마음으로' 같은 말들로 자신들의 아이돌 소비를 미화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성'이 근간이 된 콘텐츠를 돈을 내고 '소비'한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질타가 이러한 부자유를 낳는 것이다. 가수를 좋아하는 포인트는 노래여야만 하고, 배우의 연기만을 소비해야 한다는 법 따위가 없을진대, 아예 사람 자체를 사달라고 나온 아이돌을 소비하는 것에 솔직하지 못하고 부끄러워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며칠 사이에 아이돌과 아이돌 급의 운동선수가 연애 스캔들을 터뜨렸다. 팬들의 충격과 분노가 아직도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들에게 쏟았던 애정이 아깝다거나 여태까지 그들이 팔아온 이미지를 이야기하며 실망했다는 등의 성토글들이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이며 SNS를 가득 메웠고, 심지어는 CD나 사진같은 것들을 찢고 부순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대중에게 노출됐다는 이유만으로 공개 연애를 하지 못할 이유가 있냐며 쿨한 반응을 보이는 팬들도 있다. 그들의 팬이 아닌 사람들은 팬들이 보이는 격한 반응을 한심하게 여기며 '그들은 너의 존재도 모른다'고 비웃기 일쑤다. 하지만 나는 외려 팬들의 충격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이 우습다. 간단히 말해 지갑을 열었든 시간을 투자했든 그것과 등가교환한 콘텐츠가 소비자를 만족시키지 못했을 때의 당연한 불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특히 이와 같은 소비의 불만족의 대상이 사람이었을 때, 그 실망이 상처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깡그리 무시되고 만다. 예전 한 아이돌의 스캔들 게시물 아래에 달렸던 절묘한 비유의 댓글이 떠오른다. "우리들도 진심으로 아이돌이 연애를 안 한다거나 연애를 해 본 적이 없다는 말 같은 것을 믿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돌은 아이돌인 이상 자신의 연애에 대해 언급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초밥 요리사가 '방금 똥 싸고 왔습니다! 완전 시원하네요. 자, 바로 초밥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아 괜찮습니다 손은 씻고 왔으니까요' 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아이돌이 정말로 내 것이 아님을 모르겠는가. 하지만 아이돌 팬들의 소비 과정에서 '온전히 남의 것인' 아이돌은 없다. 그야말로 핥아봐야 모니터 맛만 나는 연인일지언정 거기에 쏟아부은 감정들이 한순간에 아까워지는 것, 그 묘한 찜찜함에 대해 공감하지 못할 이유는 대체 뭐란 말인가. 기실 연예인들이 공개연애를 꺼리고, 연애 사실이 매스컴에 의해 발각(?)됐을 때 감히 자신을 피해자로 자처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욕을 먹을 것 같아서가 아니라, 더이상 스스로가 대중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팔리지 않는 상품이 되어 진열장의 먼지를 다 마시게 되는 상황이 두려워서가 아닐까. 자신의 존재의의를 배신한 순간, 아이돌은 그만한 타격을 감수해야만 하는 운명 또한 타고난 것이다. 그러니까,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 아이돌 팬들은 아이돌의 의의에 맞게 그들을 소비했을 뿐이다. 무언가의 소비자인 이상, 누구도 아이돌 팬들의 가슴에 난 스크래치를 한심해 할 자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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