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를 봤다.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씩은 사주카페같은 캐주얼한 분위기에서 사주를 보는 것을 즐기는데, 나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타고난 생년월일시만으로 나의 기질이라든가 현재 상황을 비슷하게 맞추고 미래에 대해서 점친다는 것이 꽤나 흥미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용하다는 사주카페를 검색하고, 사주를 봐 주는 선생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서로의 얘기를 들으며 신기해하는 과정 전체가 상당히 오락적인 부분이 있다. 그런데, 말로는 '재미로 본다' 하지만, 친구들과 사주를 보러 가자는 얘기가 나오는 때는 공통적으로 삶에 힘든 부분이 있던 순간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결국 우리는, '재미'라는 말로 내 미래를 점쳐보는 것의 진지함을 애써 희석하며,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말을 기대하는 '답정너'였던 것 같다.
그래, 고백하자면, 선생님(?)이 어떤 말을 하든지 그가 말하는 내 미래의 모습에 기대고 싶었던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속 한 구절이 내 마음을 그대로 대변할 것이다.
나처럼 하고 싶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 해도 되고, 아무리 나쁜 일이라도 저지를 수 있는 자유와 공부하고 싶으면 무한정 공부할 시간이 있는, 또 어떤 소원을 말해도 거의 이루어 질 것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는 누군가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라고 노력의 한계를 정해주는 것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 다자이 오사무, <여학생>
막연하지만 분명한 꿈을 갖고 있기는 해도, 그게 현실이 될 것이라는 확신까지는 분명하게 가질 수 없는 내게 미래는 그야말로 '안개 속'과 같다. 원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걸 얻기 위해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 지는 잘 모르겠다. 나를 둘러싼 모두가 '너는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해 주고, 나 역시도 얼마 전까지는 그렇게 믿고 있었지만, 몇 년 째 바뀌지 않는 현실에 나는 꽤나 지쳐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비과학적이고 터무니 없는 얘기일지라도, 타고난 운명이란 것을 믿어보고 싶어질 정도로 힘들 때는 점을 보러 갔다. 나의 사주는 다행히도, 내가 원하는 일과 내가 어울린다는 답을 내놓았다. 여태까지 내가 모든 일에 있어서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 소위 '잔머리'로 살아 왔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어느 정도까지는 그 잔머리가 통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창조해 낼 만한 창의적인 면은 부족하다는 말이 이어졌다. 이런 얘기들이 공교롭게도 거의 사실이었기 때문에, 타고난 팔자라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점쳐 본 나의 미래에 따르면, 되긴 된단다. 하지만 나는 사주를 보면 볼 수록 내가 원하는 것이 완벽한 내 운명이기를 기대하기 시작했다. '되긴 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이게 천직이라 무조건 이 길을 가야하고 결과적으로도 무조건 된다는 말을 바라게 된 것이다. 사주를 봐 주는 사람들도 가까운 미래에 대한 확언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몸을 사리는 터라, 그렇게까지 힘주어 말해줄 수도 없고 그러지도 않는데 나는 억지로라도 그 말을 듣기를 원했다. 삼십분에 이만원 짜리 힐링의 결과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 불만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더이상 사주를 보지 않기로 했다.
순수한 의미의 창조가 가능한 유전자가 극히 희귀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그 희귀함을 타고나지 못했기 때문에 하는 자위가 아니다. 실제로 현대의 거의 모든 직업은, 극단적으로 말해 기생직이지 않은가. 오히려 나처럼 대놓고 기생을 잘 할 팔자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칭찬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타고나기를 '난 년'으로 태어나지 못했다고 해서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뻔한 결말이지만, 사주를 보며 마지막에 '천직이냐'고 물었을 때 얼버무릴 수 밖에 없었다면, 그게 내 타고난 운명이든 아니면 단순한 회피이든지간에, 나는 그것을 배반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 직업과 내가 운명적으로 이루어진다는 확언을 듣지 못한다면 그렇게 만들어 버리겠다고. 결국 운명은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는 클리셰로 돌아왔지만, 나는 남의 입으로부터 얻지 못한 확신을 결국 나로부터 얻게 된 것이다. 그것이 그저 오기에 불과하다 해도, 모종의 추진력을 더해 준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결국 얼마 전에 보았던 사주와 거기에 대한 내 변화한 심정은, 앞으로 사주를 보지 않도록 만들었지만, 사주에 반항하는 마음으로부터 힘을 얻게 된 우스운 상황으로 마무리 되었다. 분명 사주도 긍정적인 방향을 이야기했지만, 나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ARCHIVE 2' 카테고리의 다른 글
투표 종료까지 세 시간을 남기고 (0) | 2012.12.19 |
---|---|
틈 (0) | 2012.12.13 |
진실된 사랑의 맛을 본 적이 없는게 분명해! (0) | 2012.12.10 |
야!!! 어디서 찬내 좀 안 나게 해라!!! (0) | 2012.11.14 |
아이돌의 의의? :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 (0) | 2012.11.11 |
너의 결혼식 (1) | 2012.11.04 |
와카마츠 코지 (0) | 2012.10.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