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t Decide
플랜 B에 대한 회의.
내곁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 내가 무엇을 향해 달리고 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마치 런닝머신 위를 뛰듯 몇 년 째 같은 곳에서 머물고 있는 것도. 아무리 가까운 사람일지라도 나와는 새빨간 타인이라 그것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어쨌든 '안타까움'과 근접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그 안타까움의 집산인 나는 어떨까. 2013년 막바지에 다다라 나는 처음으로 시간이라는 것이 내 목을 졸라오고 있음을 느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결판이 나지 않는다면, 나는 플랜 C나 플랜 D의 아예 가본 적 없는 혹은 가기 싫은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심지어 그 길에마저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다면? 나는 '총체적 난국'이란 것을 그야말로 '총체적으로' 경험했다.
그래서 나는 스물 일곱의 끝자락에서 플랜 B의 문을 두드렸다. 다행히 문이 닫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이 열렸다는 것은, 어찌 됐든 플랜 B라는 행보의 '시작'을 의미했다. 태어나 처음 옷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한겨울 다 썩은 걸레를 찬물에 빤 뒤 꿇어앉아 매장 계단을 닦던 때가 떠올랐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던, 그 시작. 세상이 긍정의 의미를 억지로 구겨 넣은 그 시작을 어쩔 수 없이 다시 맞게 됐을 때, 나는 세상보다는 나를 원망하게 됐었다. 나라는 사람을 나보다 사랑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어떤 실패도 이야기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양쪽에서 밀어닥치는 구조의 벽이 나를 압사시키려 한다는 사실을 한순간이나마 스스로 체화했다는 것을 느꼈을 때, 나는 화들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많은 것을 착각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한 플랜 B, 어찌됐든 글을 팔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착각이 가장 컸다. 한국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무슨 짓을 해도 제값을 받을 수 없기에 힘든 일이다. 제값에 상응하는 돈을 받기 위해서는 업계에서 연차를 쌓거나, 유명인이 되어야 한다. 글로는 기껏해야 동네 유명인사 쯤이었던 나는 '업계에서 나를 묵혀보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 말단 중의 상말단, '인턴기자'라는 직함을 달았다. 이 동네에서는 가장 많은 돈을 준다는 곳이었다.
사실 나는 기자라는 직업을 마음 한켠으로는 무시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기자를 플랜 B로 삼았다는 것에서부터, 워낙에 파이가 넓으니,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시작할 수 있는 일'로 여기고 있었다는 것까지.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기도 하다. 스펙이라고는 개뿔도 없는 어쨌든 내가 업계에서 잘나간다는 회사의 인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다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전반적 이해도가 높았을 지라도 이 일이 가진 힘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첫 기사를 입력했을 때, 내 글 안의 누군가는 나로 인해 좌지우지되고 있음을 봤다. 그저 백수로 있기 싫었을 뿐인 나는 이 일을 아르바이트 정도로 여겼었지만, 이내 글이라는 것에 엄청난 힘이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또 하나의 착각은 내가 기자와 평론가의 차이에 대해 무지했다는 것이다. 기자는 원론적으로 온전히 자신의 생각을 글로 풀어낼 수는 없는 직업이다. 타인의 눈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존재하는 사실을 대신해서 봐 주는 일은 내 눈에 '가치중립'을 장착해야만 하는 것이 필연적이다. 이슈메이킹이 기자의 역할인 탓에, 개인의 주관 이상으로 어떤 '야마'를 잡는 센스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언론생태계는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강호에 의리가 사라진' 것처럼 언론계에는 언론인이 사라졌다. 기자가 기자의 일이라고 보기 힘든 비평을 적었을 때, 마구 '글빨'을 부릴 수 있는 글을 썼을 때 오히려 이를 가치있다고 여기게 됐다. 우선 지면의 힘이 크게 약화된 현재의 언론생태계에서 '밥을 먹여'주는 요소 중 가장 비중이 큰 것은 '트래픽'이다. 간단히 말해 기사의 조회수가 많이 나올 수록 언론사에 떨어지는 몫은 커진다. 그래서 언론사는 취업준비생들에게 '인턴기자'라는 직함을 팔아 값싼 임금으로 실시간 검색어를 이용한 기사나 TV 프로그램 모니터링 기사를 쏟아내게 만든다. 즉, 돈은 언론사를 매개로 돈다. 기자들이 쓴 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기자들 사이에서 언론사는 브로커의 역할을 할 뿐이다. 하지만 정기자들은 써봤자 '기레기'라고 욕이나 쳐먹는 기사를 쓰는 것이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턴들은 '일용직 노동자' 계약서를 쓰고 언론사에 고용된다. 내가 막 이런 기형적 시스템의 아주 조그만 톱니 하나가 되었단들, 누구를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제와서 수요가 나쁜가, 공급이 나쁜가를 따져 봤자 그야 말로 '닭이 먼전가 달걀이 먼저인가'의 지리한 논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수요, 공급, 방관자 모두에게 책임이 존재한다. 얼키고 설킨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기자는 언론인이라기보다는 회사원이 됐다는 사실만은 확실해졌지만. 어쨌든 한국만큼 인터넷이 급격히, 또 고도로 발전한 역사를 가진 나라는 없을 것이다. 기사의 포맷이 지면에서 인터넷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초반에 주도적인 역할과 위치를 점하고 있던 언론인들의 고민이 없었던 것이 다만 아쉬울 뿐.
그런데, 어떤 엿같은 상황이든 감내한 뒤 정기자가 되고, 연차를 쌓는다 쳤을 때,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들을 쓸 수 있을까? 그조차 불투명하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이러한 이해관계들이 단단히 얽혀있는 한 순수하게 기자 나름의 '곤조'를 부린다는 것 역시 어렵기 때문이다.
연예매체에서는 '디스패치' 등의 파파라치 매체가 오히려 기자의 원론적 의미와는 가까운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 기준으로는 연예매체에서 '탐사보도'라고 부를 만한 것은 소위 '뻗치기'의 결과물 밖에는 없다. 현재의 연예매체는 이러한 파파라치를 주업으로 하는 매체들과 연예기획사/방송사/영화사가 제공하는 행사나 인터뷰를 위주로 기사를 쓰는 매체들, 그리고 비평매체들로 나뉜다. 그 중 두 번째 유형에 해당하는 매체들이 가장 많다. 그것이 제일 만만하고 쉬운 일이기도 하고.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세 번째 유형의 매체들이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매체에 들어간다면 글값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는 벽에 부딪친다.
이러한 독한 회의에 사로잡혀 봤자 나는 한없이 나약한 개인이고 인턴 나부랭이일 뿐이다. 온전한 내 것을 만들 수 있고 그에 적합한 값을 매겨주는 곳을 첫 직장으로 삼는다는 것은 요원한 일일까. 내 꿈의 시작이 어떤 형태였든, 지금의 나는 나를 위해 살고 싶은 것 뿐인데. 그래서 사랑 찾~아~ 인생을 찾아~ 하루 종~일~ 숨이 차게 뛰어 다닌다~ 서울 하~늘~ 하늘 아래서~ 내 꿈도~ 가까이 온다~
여기 남은건 허망한 말뿐이네
나는 외로이 큰소리로 소리쳐 나도 변하지 않는건 아닐거야
그저 용기를 낼 수가 없었을 뿐
나는 이곳의 외로운 나그네야
머무를 곳을 찾을 수 없었다네
이루지 못한 꿈같은 것은 없지
그저 하루를 넘기며 살아갈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