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 : 다크월드, Thor : The Dark World
(기승전로키찬양 주의)
영화화된 마블 코믹스 시리즈 가운데, 주인공보다 악역이 돋보였던 것은 아마 <토르> 시리즈가 유일할 것이다. 금발에 벽안, 강인해 보이는 엉덩이 턱과 물 샐 틈 없이 장착한 근육덩어리를 가진 전형적 수퍼 히어로에 비중있는 러브라인까지 갖췄음에도, 사람들은 그에게 시련을 주는 악역에 더 관심을 보였다. '미워할 수 없다'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그가, 바로 <토르> 시리즈의 악역 '로키(톰 히들스턴 분)'다.
<토르> 시리즈는 '원작의 원작'이 있는 탓에, 텍스트를 그림으로, 그림을 영화로 재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영화 중 하나다. 그리고 이러한 상상의 이미지화 부분에서 <토르> 시리즈에는 상당한 흡인력과 그에 따르는 만족이 있다. 신의 세계가 인간계와 얽힐 때 다소 내러티브가 조잡하고 평범해지는 느낌은 아직 지울 수 없다. 대표적으로 이계의 생명체를 대하는 인간들의 시선이 뻔하고, 그 점을 보완해 줄 신화적인 요소의 디테일한 반영이 부족했다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역시 <어벤져스>의 주요한 갈등에 '로키'를 이용하며, 쟁쟁한 마블 히어로 사이에서 <토르> 시리즈의 존재감을 굳건히 다지는 것으로 어느정도 해결되었다. <토르 : 다크월드>에서는, 쭉 악역으로 머물다가 '토르(크리스 햄스워스 분)'의 조력자로 변신하는 로키를 볼 수 있다. 꽤 신선한 비틂이었지만, 아쉽게도 다시 '조잡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각 내러티브의 이음새가 헐겁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러브라인 부분에서, '제인(나탈리 포트만 분)'의 입지가 애매하다. 결국 토르로 하여금 아스가르드의 지배자 자리를 포기하고 인간계로 내려가게 한 인물이지만, 그녀를 대하는 등장인물들의 태도와 자잘한 설정들을 볼 때는 다소 '내팽개쳤다'거나 '막 던졌다'는 느낌이 든다. 3D 효과도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인 것은 아니지만, 다행히 <토르> 시리즈에서 기대했던 책 속 신화의 이미지 체험이라는 면에서는 기대 만큼의 성과는 보여 준다.
진부한 영웅보다는 매력적인 악역에게 더 눈길이 간다. '로키' 역의 톰 히들스턴이 사연 있어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질투'가 모든 행동의 동기이자 원동력이 되는 인물, 그가 가진 솔직함이 섹시하다. 이 질투라는 감정을 전면에 걸고 행동할 적에는 엄청난 자존감과 자존심의 갭, 나르시시즘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솔직함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솔직함은 차라리 용기다. 누군가를 질투하기 위해, 자신을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는지, 스스로를 얼마나 사랑해야 하는지, 열등감을 가져본 일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지독한 감정소모와 채워지지 않을 욕심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로키를 미워할 수 없고, 외려 그에게 열광하는 것은 한없이 비뚤어져 보이는 질투라는 감정 뒤의 빈 곳을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끝내 아스가르드의 왕좌를 차지한 로키가 오히려 짠하다.
post script. 이쯤되면 로키 스핀오프를 내줘도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