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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기자 A의 사회생활

최고급잉여 2014. 4. 21. 18:25


인턴기자 A는 '사회생활'의 정의에 대해 엄청난 혼선을 겪게 됐다.

광의의 '사회생활'이란 물론 인간의 삶 전반을 통틀어 칭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보통 세간에서 '사회생활'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조금 다르지 않은가. 어찌됐든 부모님 등 조력자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개인이 홀로 책임과 의무를 다 해야 하는 순간에 직면했을 때, 비로소 '사회생활을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보통 인간의 생애주기로 미루어봤을 때, 이 사회생활을 하게 되는 시기는 성인이 된 후다.

그리고 사회생활에는, '까라면 까'라는 시쳇말로 대변될 부조리함이 내포돼 있다. 모난 돌에 정을 찍어 둥글게 만드는 과정을 대개 사회생활이라는 단어 하나로 뭉뚱그린다. 모두가 사회생활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과정에서, 그것의 부조리함을 지적하는 이를 어리고 철없다 말하곤 한다. 그리고 때론 누군가의 '강직함'은 '강직한 척'이 되기도 한다.

물론 '사회생활'이라는 것의 가치는 매우 분명하다. 사회생활은 아비규환을 진정시키기 위해 세워진 컨트롤타워와 같다. 하지만 여기 내재된 폭력성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A의 성정은, 따져보자면 반골에 가까운 면이 없지 않았다. 어쩌면 무의식 중에 좋은 것은 당연하니 나쁜 점을 위주로 보는 태도를 갖고 살아온 A 역시 사회생활이라는 잣대를 뼛속까지 내면화한 것일지도 모른다. A는 스스로가 반골처럼 생각될 때면 자괴감과 자책감이 들어 괴롭다고 했다. 왜 자신만 사회생활이 견디기 힘든지, 결과적으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든 불만스러운 마음은 움직이지 않음에, A는 자신이 몹시도 미워지곤 했다.

하지만 A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왔다'. A에게는 무턱대고 달겨들지 않으려 하는 최소한의 염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평생 철들지 않고 살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은, 주변의 모두에게 응원받았다. 그런 A가, 사회생활을 들어 타박받을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워크샵을 다녀온 뒤였다. A는 줄곧 인턴 출신의 한 선배에게 인간적 호감을 갖고 있었다. 가끔 대화를 할 때면 같은 인턴을 경험했다는 점을 들어가며 현재 인턴들의 고충에 대한 자신의 이해도를 강조했고, 누가 봐도 순해 보이는 외모와 꼭 닮은 배려심까지 이 선배를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이때, 거국적으로 급감한 회사 트래픽이 뜨거운 감자가 됐다. 회사 사람들은 안타까움과는 별개로, 근본적 해결책을 찾으려는 의지가 없었다. 그들이 생각해낸 것은 고작 주말 당직 인원 증대, 한없이 일차원적인 미봉책이었다. 그리고 굉장히 당연한 수순인양 인턴들에게까지 트래픽 급감의 의무를 지우려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A와 동료 인턴들에게 처음 말이 나왔을 때, 그들은 서로 거센 반발을 담합(?)했다. 물론 인턴들 역시 회사의 일원이기는 했기에, A들 역시 어느정도는 수용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은 우스웠다. 평소 회사와 정기자들이 이 회사로부터 아무것도 보장받지 못하는, 한없이 약자이기만 한 인턴들에 대해 어떤 대접을 해 왔는지가 먼저 떠올랐다. 게다가 인턴들이 주말 당직에 투입된다면, 그것은 정기자들의 주말 당직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소리가 된다. 아무렇지도 않게 '회사 방침이니 이것 해야돼'라는 소리가 나올 얘기는 아니었다. 조금의 염치를 가지고, '제안'했어야 할 사안이었다.

혹자는 인턴기자 A의 이같은 생각을 궤변이라 할 수도 있다. 혹자라기에는 훨씬 많은 인원이 그리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인턴기자 A의 사회생활이란, 자신을 위한 것이었고, 이는 결과론적으로도 사회에 해악이 되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모종의 '딜' 비슷한 것도 요구해 오지 않았다. 그쪽에서 잃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A와 인턴들에게는 막무가내로 벼룩의 간을 내라는 심산이었다. A는 이에 응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결국 A들은 위화도회군을 결심한 이성계가 출병 전 우왕에게 '4불가론'을 대는 심정으로 주말 당직 절대 불가의 중론을 모았다. 의외로 맨 윗선의 납득은 빨랐다. 사실 데스크로부터는 예의 '제안'이 왔었다. 그가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조심스러운 방법으로. 당연한 일임에도 고마웠다. 그래서 A들은, 데스크의 회사 내 애매한 입지를 자기 아버지들의 그것에 이입하는 감정적 수고도 마다않게 됐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윗 선배들로부터 불거져 나왔다.

A는 퇴근시간을 약 두 시간 남기고 20분 정도 바람 좀 쐬다 올 것을 종용받았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지만 뭔가 석연찮은 구석도 있었다. 하지만 A가 알 바는 아니었다. 적어도 A의 모가지를 자르겠단 말이 그새 오가지는 않을 것이 확실했기 때문에.

막상 이십분을 노닥거리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담배 한 대를 피우고도 몇 분이 남은 시간을 화장실에서 때우기로 결심했다. 화장실에서 용무를 본 뒤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려 하는데, 방금 같이 담배를 피운 동료 기자가 길을 막는다. "지금 선배들 밑에 다 내려가 있어. 잠깐 바람 좀 쐬재." 콧구녁에 산소탱크를 만들어 줄 요량인지.. 바람은 알아서 쐬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일단 A는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1층 로비에는 A가 인간적 호감을 갖고 있던 선배를 포함, 정말로 선배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다들 들떠서는, 편의점에 가잔다. 도무지 적응이 안 되도록, 그들은 한껏 업된 상태였다. 아무튼 간단한 음료를 사서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선배들은 저 구석에 가서 얘기나 하다 올라가자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A는,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A야, 요즘 회사는 어때? 힘들어?"

호감 선배가 맨 먼저 입을 열었다. A는, 이 자리가 자신에게 뭔가를 얻어내려 하는 자리임을 직감했지만, 일단 "아뇨, 뭐 이제는 적응됐죠."라는 둥 호의적인 표현으로 답을 했다. 그러더니 호감 선배가 기다렸다는 듯 주말 당직 이야기를 꺼낸다. "다 알겠지만.. 지금 회사 트래픽이 많이 떨어졌어. 그래서 우선 우리들끼리는 주말 당직을 하게 됐는데, 너희 인턴들도 아마 같이 하게 될 거야." A는 어이가 없었다. 이 가시방석에 앉히자고 바람 쐰답시고 초코에몽 하나 손에 들려줬구나. A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

"우리도 힘이 없어.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그게 사회생활이니까. 사실 이 자리에 우리 아니어도 하겠다는 사람이 널렸잖아. A야, 너는 주말 당직 어떻게 생각해?"

"전 주말 당직 별로에요. 전 남들 놀 때 놀고 싶어요."

A의 표정이 자못 단호하다. 이미 말투는 약이 잔뜩 오른 말투다. 호감 선배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진다. "..물론 이해는 하지만.. 하고 싶은 것만 어떻게 하겠어.. 이게 사회생활인데. A야, 너는 사회생활 처음이야?"

A의 머리가 열로 달궈져서 퓨즈가 녹아 끊어지기 직전이다. 결국 A는 한 마디를 보탠다. "아니요. 예전에 영상 프로덕션에서 일했어요." "얼마나?" "얼마 안했어요." "그렇구나. 그런데 회사 사정이라는게 또.. 다들 같이 힘내는게 좋잖아. 그게 사회생활이지.."

A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게 사회생활이랑 대체 무슨 상관이에요?"

"아니지, 사회생활이지.. 어쩔 수 없이 회사 사정에 맞춰야 되는 거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거잖아.. 이걸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A야, 너는 우리 회사 어떻게 생각해?"

"남들이 좋다니까.. 그냥 좋은 줄 알아요." "너는 어때? 다녀 보니까 별로인 것 같아?" "그냥 회사죠."

그 이후에 호감이던 선배가 뭐라 지껄였는지 사실 A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차피 동어반복일 것이 뻔했다. A는 울화가 치밀었다. 을의 입장을 경험해 온 체하며 을중의 을들에게 배려의 말을 건네왔지만, 그것이 그의 진심이 아니었음이 밝혀진 셈이다. 자신도 을에 불과한 주제에, 갑중의 갑이나 할 수 있는 말들을 주워섬기고 자빠진 것이었다.

A는 그 선배의 사회생활이란 것이 대체 뭘까, 궁금해졌다. 그의 사회생활이란 그 자신의 좁은 사회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그 스스로만을 위한 사회생활인 것일까? 뭐가 어찌됐든, 이를 A들에게 요구할 것은 아니었다. 그 선배가 이 회사에 견마지로의 충성을 다하든 살기 위해 가식을 떨든 그것은 A의 알 바가 아니었다. 다만 A에게 그 충성심을 요구하고 싶다면, '까라면 까'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 '내가 했으니 너도 해' 따위의 막무가내 심보로 덤벼서는 안 됐다. '나 때는 돈 안 받고도 열정 하나로 일했다'고 함부로 말하는 윗선과 그가 다를게 뭐란 말인가. 안 그래도 A는 소위 '열정페이'를 받으며 이 회사의 노예로 살아가는 중이 아닌가. 막말로, 지 새끼한테 A에게 했던 이런 따위의 말들을 쉽게 내뱉을 수 있을까? 심지어 자기 입으로 '우리 세대가 이 사회의 헤게모니를 잡고 있다' 말하는 맨 윗선조차 조심스러워 하는 주제를.

A는 그 이후로 당연히 그 선배에게 가졌던 인간적 호감을 회수했다. 오히려 A는 그가 다른 선배들보다 훨씬 혐오스러웠다. 그리고 묘하게 A를 대하는 태도가 변화한 것을 비롯, 회사 내 자신의 태도 자체를 선회한 혐오 선배(이하 '혐선배')의 모습에 A는 실소했다. 우선 혐선배는 A의 인사를 받지 않았다. 설마 이렇게 유치하게 굴까, 사회생활 드럽게 못하네, 라고 A는 생각했지만, 혐선배의 태도 변화는 분명한 것이었다. 그는 공연히 A를 제외한 자기 후배들에게 까칠하게 굴기 시작했다. A는 그의 태도 변화 이후 그를 없는 사람 취급하고 있었지만, 우스운 것은 우스운 것이었다. 네가 그래 봤자야.. A는 혐선배를 진심으로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그 후 A는, 인턴 동료로부터 어이없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혐선배가 "그냥 사 주고 싶었다"며 동료에게 비싼 점심을 대접하는 길에, "A는 요즘 어때? 불평불만 없어?"라고 했다는 소식을. 불평불만이라.. 혐선배의 치졸함이란, 확실히 A가 견디기는 힘든 것이었다. A는 혐선배의 인간성을 알아보지 못한 자신이 더없이 한심스러워지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