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기자 A의 사회생활
A는 요즘, 이상한 죄책감을 느낀다고 했다.
A는 선천적으로, 그리고 쓸데없을 정도로 엄청난 공감인자를 지닌 '역지사지'의 달인이었다. 이는 불편하면 불편했지 전혀 좋을 것 따위 없는, 일종의 장애에 불과했다. 언급했듯 A는 신을 믿지 않지만, 마태복음 7장의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접하라'는 말만큼은 깊이 신뢰하고 있다. 인턴기자 A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들이 A에게 대접받고 싶은 만큼 A를 대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A의 그 고백들은 팩트의 경계를 한번도 넘은 적이 없지만, 가끔은 그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짠하다고 느껴졌다. 그들 역시 사회생활을 하고 있을 뿐인데. 물론 A의 기분을 매번 좆같이 만들고, 하늘을 찔렀던 자존감과 자신감을 강탈해 가기는 했지만. 문득문득 드는 이따위 싸구려 감상들이 A는, 심히 '혐오스러웠다'.
잘못이 있다면, 과연 이는 누구의 것일까? A는 신명나게 회사 이야기를 털다가도, 이런 자기혐오에 시달렸다. 특히 오늘처럼 그나마 자신을 '인간적으로' 대해 주는(그냥 우리가 아는 '기본' 정도는 지킨다는 뜻이다. 다만 다른 선배들보다 조금 정성들여 적은 듯한 쪽지내용에도, A는 감동하곤 했다.) 선배와 당직을 설 때면, '한 놈만 걸려라' 싶도록 바짝 벼려져 있던 날이 갑자기 무뎌지는 것도 느껴졌다.
말했듯이 별로 싫지 않은 선배다. 다른 선배들에 비해서는 '동방예의지국의 현신이 이 선배가 아닐까' 싶을 정도의 인간성을 갖고 있다고, A는 생각해왔다. 사람의 말투에서 '다정함'이라는 것을 느끼려면 어느 정도 문장의 길이가 담보돼야 한다. 이 선배는 마침표 한 개로 단호히 문장을 마무리하며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한편, 최소한 귀찮다는 듯이 쪽지를 보내지는 않았다. 즉 이 선배에게는 적어도, A의 메신저 사회생활, '느낌표 연발'을 사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이 선배가 이상하다. 표출이 턱없이 느려 여러번 A를 당황시켰다. 기사를 꼼꼼히 읽어보는 것인지, 다른 회사의 기사를 '우라까이'했나 확인하고 있는지, 자기 기사를 쓰고 있는지, 그저 놀고 자빠졌는지 물론 A는 알 도리가 없다. 다만 A가 아는 것은, 속도에서 밀릴 경우 처참한 조회수를 직면해야 함과, 포털사이트 메인도 노려볼 수 없다는 사실 뿐이었다.
어쨌든 큰 돌발상황은 없었다. 예컨대 말없이 기사 표출이 보류된다거나 해서 A의 속만 까맣게 타들어 가도록 만드는 그런 돌발상황. 느리긴 해도 기사 출고는 순차적으로 진행됐다.
이윽고 마지막 프로그램 모니터링을 하게 됐다. 최근 신선함으로 꽤 많은 인기를 얻었던, 정치 비평과 문화 비평을 겸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두 번째 해 보는 것이었다. 다른 인턴기자들이 썼던 기사를 참고하니, 프로그램 앞부분의 정치 비평은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일단은 이 회사가 연예매체라 이런 것도 의식했나 싶어, 한 주는 그 부분을 쓰지 않고 넘어갔었다. 당연히 별 뒷말은 따르지 않았다. 프로그램 말미의 문화 비평은, 잘게 쪼개 쓰더라도 나름 4~5개의 기사를 털 수 있을 정도의 야마가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혐오스러웠다' 선배는 정말 누구도 관심이 없을 법한 야마를 쥐어주며 자신의 신뢰도를 또 한 번 하락시켰었지만.
아무래도 이 선배, 오늘은 뭔가 자기 기사를 쓰느라 바쁜 모양새다. 어차피 그날 자기 기사의 빠른 표출을 포기했던 A는 철저히 시청자의 입장으로 서두의 정치 비평을 보면서, 꽤 유익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며 약 40분을 보냈다. 한창 동계올림픽 시즌이었던 그때, 프로그램에서는 무소불위의 피겨스케이팅 선수와 빙상연맹을 다뤘다. 1주년 특집방송이어서였는지, 어느 정도 연성의 주제에 접근했던 것 같았다.
이후 프로그램이 말미로 접어들며 문화 비평 부분이 시작됐다. 1주년 특집으로 전문가의 입을 빌어 그간 방송된 자신들을 비평했다. 이 뻔한 재탕 가운데서 적어도 야마 네 개는 잡아야 한다. 그리고 A는, 자신이 가고 싶은 회사의 편집장으로 있는 한 문화평론가의 말을 기사화했다.
기사 표출은 여전히 느렸다. A가 마지막 기사를 힘겹게 써낸 뒤 방송이 끝났음을 보고하자, 수고했다며 들어가 보라는 친절한 대답이 돌아왔다. A는 안심하고 컴퓨터를 종료한 뒤, 여느때처럼 씻지도 않고 침대에 드러 누웠다.
다음날이었다. 회사 사이트에 들어가 본 A는 자신의 기사가 약 한시를 넘겨서야 표출된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의아한 점이 있었다. 문화평론가의 말을 인용했던 기사가 출고되지 않은 것이었다. A는 인턴들과 갖은 이유를 추론해냈지만 물론 결론은 나지 않았다.
A는 본격적으로 일에 돌입하기 전 정해진 수순대로 메신저에 접속했다. 부재중 상태에서 온 한 통의 쪽지가 있었다. 나한테 따로 쪽지를 보낼 사람이 없는데.. 하며 쪽지 내용을 확인했다. 이윽고 A의 등과 겨드랑이에서는 팔당댐이 무너진 양 홍수가 났다.
"A야 바쁘게 기사 넘기느라 앞부분 신경을 못 썼는데. 일단 너 로그아웃 해서 메시지로만 남길게. 비평 프로그램 모니터링 할 때 왜 빙상연맹, 피겨선수 부분은 안 쓴거야? 상식적으로 봐도 지금이 동계올림픽 시즌이고 오늘 새벽이 그 피겨선수 경기인데 그쪽이 더 핫한 거 아닌가. 이해가 안 되네."
A는, 이 쪽지의 세 부분에서 레프트, 라이트, 훅을 연달아 맞았다. '상식적으로' '더 핫한 거 아닌가' '이해가 안 되네'의 쓰리콤보가 A의 명치를 세게 가격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졸지에 A는, 이해가 안 될 정도로 트렌드도 읽을 줄 모르고, 상식도 없는 년이 돼 버렸다. 그리고 A는, 저 쪽지의 목적을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뭐, 자기가 이해가 안된다는 걸 공지하고 싶었던 건가? 앞으로 주의를 하라든지 하는 구체적인 행동강령 없이 제 앙금만 배설해 놓은 쪽지는 여러번 읽어도 화를 북돋웠다. 세금 떼고 백만원도 안되는 돈을 받으면서,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까지 마다할 수 없다는 사실이 A는 못내 억울했다.
A는 요즘, 가장 친한 친구로부터 잔뜩 날이 서 있는 것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친구에게 짜증을 낸 것도 아닌데, 친구는 표정을 숨길 줄 모르는 A의 변화를 읽었던 모양이다. 실제도 그러했다. 이전보다도 더, 뭐 하나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한 예를 들어 보자면, A는 간만에 이발을 하러 미용실을 찾았는데, "어떤 스타일로 하고 싶냐"는 말도 없이 가위를 집어드는 미용사에게 "어떤 스타일로 하고 싶은지 안 물어 보세요?"라며 한껏 짜증을 부렸었다. 이처럼 더없이 피폐해지는 자신이 역해질 때면, 그런 자신을 반성하려는 자신이 또 한 번 역해졌다. 누가 날 이렇게 만들었나, 라며 세상을 원망하기도, 내가 왜 이렇게 변했나, 라며 자신을 원망하기도 A는 버거웠다. "죄송합니다. 판단 착오였습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쪽지를 부재중 답장으로 보내며, A는 자신의 속에서 난 천불 곁에 누가 가스 밸브를 열어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 밸브를 열어둔 사람의 방향으로는 감히 폭발도 할 수도 없는 이 모든 것에 A는 다시 한 번 좌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