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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기자 A의 사회생활

최고급잉여 2014. 4. 2. 16:31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인턴기자 A의 사회생활은, 사내 메신저에서도 어김없이 계속됐다.

A는 문장부호나 이모티콘 따위로 자신의 현재 심경을 드러내는 일을, 이전에는 더없이 졸렬한 것으로 여겼다. 친구들과 메신저로 대화할 때 'ㅋ'의 갯수로 자신의 감정 상태를 표현하고 타인의 감정을 파악하는 일은 이미 익숙할대로 익숙해졌지만, 이것이 면대면으로 대화를 할 때에 비해서는 피상적이라 생각한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는, 간혹 문장부호를 전혀 쓰지 않은 문장으로 '삐진 티'를 내곤 했다. "나 안 삐졌어"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은 채.

A는 이러한 메신저 스킬(?)을, 직장에서까지 활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처음 사내메신저 아이디를 부여받던 날, 데스크에게 기사 표출을 요구하는 첫 쪽지를 보내게 됐을 때, A는 문장의 끝에 어떤 부호를 붙여야 할지 고민했다. 마침표는 너무 싸가지 없어 보이고, 그냥 부호 없이 보내기에는 더 싸가지가 없어 보일테고, 'ㅋ'을 붙이자니 A 스스로 봐도 어이가 없었다. 결국 A는 느낌표를 택했다.

'아가리 똥내 예약일 듯' 싶도록 오고가는 대화가 없는 이 사무실 안에서는, '느낌표'가 A의 사회생활을 책임졌다. 느낌표는 메신저 대화의 만병통치약이었다. A는 생각했다. 느낌표는, 인턴답게 뭔가 모자라보이면서도 딱딱하지 않은 문장부호라고. 물론 A의 쪽지를 받는 이들도 그리 생각하리라곤 장담할 수 없었지만.

A는, 일한지 며칠 안 된 시점에서부터 싫은 사람들이 생겼다. 느낌표를 입력하기 위해 쉬프트를 추가적으로 눌러야 한다는 것조차 정력낭비로 생각될 정도로 싫었다. 그순간 A의 못된 버릇이 발동됐다. '너는 나한테 비호감이다'라는 사실을, 문장부호로 표현하게 된 것이다.

A는 그때부터 느낌표를 가려 쓰기 시작했다. 싫은 사람에게 메신저를 보낼 때는 문장의 끝에 아무런 부호도 쓰지 않았다. A는 '문장부호의 유무'라는 행동의 뒤에 숨어서 자신의 호불호를 표현했다. 하지만 소심한 A는, 문장의 끝을 아무 것도 없이 마무리하면서도, 속으로는 은근히 쫄고 있었다.

오늘도 역시 재택근무다. A는 재택근무를 할 때 내근할 적보다 선배와 단기간에 더 많은 쪽지를 주고받는다. 물론 내용은 없지만. A의 '느낌표 사회생활'이 가장 빛을 발하는 때다.

인턴 블랙리스트 0순위의 선배다. 선호도가 바닥이기로는 '혐오스러웠다' 선배와 쌍벽을 이룬다. 하늘이시여.. 제가 뭘 잘못했기에 가장 바쁜 수요일에 이 선배와 함께 하게 하시나이까. A는 무신론자이지만, 이때만은 모든 것이 하늘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마음 편하다는 것을 체득했다.

A는 이 선배와 독특한 인연으로 얽혀 있다. A에게는 연예부 기자인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그 친구와 이 선배는 201X년 입사 동기(기자의 경우 회사를 불문하고 입사년도가 같으면 동기로 간주한다)다. 그 둘이 입사했던 해 이후로 연예부 기자 공채가 가뭄에 콩나듯 이뤄진 탓에, 그들은 n년간 회사의 설거지를 도맡아 해 오면서 끈끈한 동기애가 생겨났던 모양이다. A는 이 회사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 선배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 왔었다. 좋은 내용들로만.

그래서 A는,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이 선배가 자신보다 한 살이 어리기는 하지만 어디 하나 모난 곳도 없고 똑부러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설마가 사람잡는다'는 이야기는 왜 항상 내게 나쁜 쪽으로만 돌아가는 것일까. 친구가 지나가듯이 A의 이야기를 흘린 덕에, 이 선배는 A의 존재에 대해 대강 알고 있었다. A는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이 선배가, 그래도 들은 말이 있는데, 어느정도 잘 해 주지는 않을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은 무슨, 옛말은 항상 내게 불리하게 해석할 때 그 말이 내포한 뜻을 가장 살리곤 하더라. 처음에는 존댓말도 아닌 것이 묘한 하오체를 구사하더니, 어느새 선배는 A에게 야자를 텄다. A는 찜찜하긴 했지만, 공과 사는 구분하는 것이 사회생활이라는 생각에 느낌표를 손가락에 장전한 채 이를 연발했었다.

A는, 최대한 좋게 생각하고 싶었다. 친한 친구의 말도 그랬고, 어찌됐든 회사 선배였기 때문에. 하지만 A는 메신저를 통해 느끼게 된 이 선배의 사회생활이란 것을, 도무지 존중해줄 수 없었다. A는 이 선배와의 첫 당직날, 인기 드라마의 스페셜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하다가 도저히 쓸 기사가 없어 한 배우의 NG 장면을 기사로 썼었다. A 스스로가 봐도 허접한 기사였다. 이 선배는 그 기사만을 제외하고 표출을 시작했다. A는 일견 이해가 가다가도, '그냥 고치라고 말을 하던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기사는 결국 그날 끝까지 표출되지 못했고, 다음날 사무실 안의 온 선배들에게 보고된 후 삭제됐다. A는 후일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됐고, 기자 친구에게 메신저를 보내 사람 보는 눈이 그렇게 없냐며 쌍욕을 퍼부었다.

이 선배는 다른 인턴들과도 비슷한 사회생활 요령으로 마찰을 빚었다. 모니터링에 관한 어떤 지시도 받지 못한채 바로 일에 뛰어든 한 인턴 친구가 기사에 쓸 사진을 캡쳐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했다. 이 선배는 이번에도 말없이 이를 윗선에 보고했다. 그날부터, 인턴 사이에서 이 선배와 당직을 하는 날은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는 날로 통했다.

A는 이 선배에게, 있는 힘껏 싫은 티를 내고 싶었다. 모니터링 프로그램 목록 보고 때 문장부호의 생략은 물론이고 인사까지 생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선배가 그런 것 따위는 신경쓰지 않을 것 같아, 약이 올랐다.

A의 관찰결과, 이 선배의 메신저 사회생활은 세미콜론으로 점철돼 있었다. ';' 하나씩을 문장 말미에 찍어 보내는데, A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 세미콜론이라는 간단한 부호에는 생각보다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니년의 행동이 어이없어 땀이 난다' '황당하다' '이딴 식으로 할래' '아주 하는 짓거리가 가관이로구나' '왜 이러삼?' 등의 다양한 부정적 뉘앙스가, 이 세미콜론 안에 모두 들어있다. 'ㅋ'을 하나만 찍을 때의 효과와 동일한 정도의 충격파가, ';'를 하나만 찍을 때 역시 상대에게 가해진다. "그런데 A야;"로 시작하는 쪽지가 날아올 때마다, A는 이 선배의 키보드에서 세미콜론을 파괴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세미콜론을 달고 날아드는 문장은 그 어떤 직접적 지적보다 강한 짜증을 유발한다. 모든 잘못을 상대에게 전가하면서도 그것을 돌려서 말하기 때문이다. '너 때문에 내가 짜증이 났어. 이건 다 너 때문이야. 하지만 내가 마음이 좋은 사람이라 화를 내지는 않는데, 좀 땀이 나네;'를 세미콜론 한 방으로 축약한다. 참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메신저 사회생활이 아닐 수 없다. 예를 들어 보자. A가 무엇을 실수해서, "죄송합니다! 바로 수정하겠습니다!"라고 선배에게 쪽지를 보냈다 치자. "아니야. 내가 할께."와 "아니야; 내가 할께;"의 차이를, 여러분은 느낄 수 있겠는가?

이 선배의 메신저 사회생활을 접할 때마다, A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에게 '모른 죄'를 덮어 씌우고 있었다. 잘한 것은 당연한 것이고, 못 하면 다 A의 잘못이다. 이 선배가 구사하는, "기사 다 썼으면 외신이라도 찾아" 등의 묘하게 건방진 명령조도, 세미콜론이 가미되면 알아서 빠닥빠닥 해외 찌라시를 둘러보지 않은 A의 과오로 만드는 대단한 힘이 있었다.

A는 이날 연예 정보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하면서, 성매매 혐의로 검찰에 회부된 여자 연예인의 악플 내용과 만화를 원작으로 한 슈퍼 히어로 영화의 한국 촬영 정보를 기사화했다. 재탕기사는 쓰고 싶지 않았지만, 이 선배는 기사가 약 20분간 올라오지 않을 때 세미콜론으로 A를 닦아 세우기 때문에, A는 어쩔 수 없이 손가락을 놀렸다.

선배로부터 쪽지가 왔다. "A야; 사진에 년이니 뭐니 욕이 너무 적나라하다; 모자이크라도 좀 해" A는 건조하게 "네"라고 답한 후 사진의 '년' 이라는 단어를 모자이크로 가렸다. 이윽고 또 쪽지가 날아왔다. "A야; 이 영화 기사는 영화 팀에서 계속 썼던 거잖아; 내용이 다 똑같아" A는 폭발을 목전에 뒀다. '아 씨발 그래서 어쩌라고? 나한테 뭘 원함?'이라 답장을 쓰다가, 다시 백스페이스를 눌러 쪽지를 수정한다. "네 어떻게 할까요?" A는 정말, 정말이지 힘겹게 물음표를 눌렀다. 마치 튀어나오려는 울화를 손가락으로 누르듯이.

A는 항상, 연예 정보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하기 전에 선배들이 썼던 기사를 확인한다. A가 뽑았던 제목은, 분명 없었다. 며칠 뒤 A는, 영화 팀에서 A가 뽑았던 제목과 매우 유사한 제목으로 기사를 출고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A는 다시 하늘을 찾았다. 제발.. 하늘이시여.. 저년과는 어디에서 만나든 연민이 불가능한 외나무 다리 위 원수로 만나게 하소서.. A는 늘상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신은 죽었다'고 말했던 니체의 후예를 자처했었다. 그러나, A는 곧 신을 믿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