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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정복고

최고급잉여 2012. 12. 20. 21:15

사실 나는, 협의의 정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정치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거기에 관심을 갖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 동네의 살림이나 나에게 유리한 제도들을 부러 찾아보고 그러는 편은 아니다. 현실 단위에서 내가 관심을 두는 부분은 옥션의 할인쿠폰이나 버스가 몇 번까지 환승이 되는지 같은 것들이다. 우리 집 근처의 외진 길에 설치된 가로등은 조도가 매우 낮고, 어느 정도 밤이 깊으면 꺼진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대해서 분개해도, 구청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다거나 하는 일은 무척 귀찮아 하는 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이처럼 불편이 피부에 닿아오더라도 그것이 별 것 아니라고 여겨진다면 일정 수준까지는 그것을 감수하려고 한다. 마치 썩은 이를 아파서 씹지 못할 때까지 방치하는 것처럼, 사소한 정치적 의견을 낼 상황이 오더라도 이를 부담스러워 하고 귀찮아하는 것이 보통의 국민들이 갖는 정치적 태도다. 정치란 적어도 구단위나 시단위에 적용되는 커다란 범위에서, 사람들의 위에 군림할 자격을 갖춘 지도자가 하는 것이란 인식이 아직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몇 년에 한 번 돌아오는 선거때만 정치인이 되고, 나머지 시간들은 강력한 지도자의 밑에서 '신민'으로 살고자 하는 경향을 보인다. 독재가 '어쩔 수 없는 것'이 된다면, 분명 이런 맥락일 것이다. 또한 이런 논리는 이번 대선의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음도 자명하다.


그렇기에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자랑스런 국민들이 여느 해처럼 선거날 자유롭게 놀러가지 않고 투표를 택했다는 것, 그래서 75.8%라는 기함할 만한 투표율을 기록했다는 것은 확실히 놀라운 일이다. 2007년 정권이 교체된 후로부터 야당이 된 쪽은 다시 정권을 되찾기 위해 크게 세 가지의 노력을 했다. 하나는 노무현이라는, 전무후무한 이미지를 가진 정치인의 아우라에 기대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그의 탈권위적 이미지를 이용해 정치에 특히 관심이 없던 이삼십대 젊은 층의 투표를 독려하는 것, 나머지는 어설픈 수준의 '좌클릭'이었다. 그리고 5년 동안 있었던 다양한 선거에서 이 세 가지의 전략은 마치 그것만이 최선이라는 듯이 계속됐다. 노무현의 죽음에 대해 여당에 갖는 복수심을 증폭시키고,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과 여당 지지자들을 한데 묶은 후 그 반대편에 자신들과 '깨어있는 시민'로 상정된 지지자들을 위치시켰던 민주당의 행보는 몇몇 선거에서 주효했다. 하지만 서울시장이나 도지사같은 굵직한 직책이며 국회의석 수 같은 중요한 것들은 뺏겼다. 그들은 끊임없이 노무현과 정권심판만을 이야기했고, 복지공약 같은 것들을 내걸긴 했지만 곁다리에 지나지 않았다. '노무현의 세상'이 무엇인지 구체화해서 보여 주지도 않았으면서, 그것만을 읊었다. 사람들은 정권심판의 이유를 노무현의 죽음과 이명박이라는 한 인간, 집권 여당에서 밖에 찾을 수 없었다. 모든 부조리는 의인화됐고, 특히 현 여당의 집권 이후 모든 선거는 정책선거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조금 더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지만, 이내 피로해졌다. SNS가 급격히 발달한 후로 그것은 마치 '깨어있는 시민'들의 정치 공론장처럼 여겨졌지만 현실세계에서의 결과는 대부분 그것을 배반하곤 했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반대를 오직 '권리 위에 잠자는 시민'으로 부른 탓에 정치혐오와 반발심도 격해졌고, 지역갈등을 뛰어넘는 세대간 갈등과 이념적 갈등마저 심화됐다. 고작 몇 개의 좌클릭 정책을 내놓고 스스로를 '진보'라 칭한 민주당은 소수였던 진보정당의 가치마저 묵살해 버렸다. 새누리당의 편이 아니면 모두 우리 편이라는 명제의 역은, 우리 편이 아니면 모두 새누리당 편이고, 정권심판의 대상이며, '잠자는 시민'이란 소리가 아니던가. 정치가 감정의 영역과 버무려지며 격해진 싸움판에는 '종북좌파'나 '친노종북'같은 말같잖은 그룹핑이 자행되기까지 했다. 이런 현상에는 언론사들도 크게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제, 민주당이 강조하던 70퍼센트 중반을 넘어가는 투표율에도, 그들은, 그들의 지지자는, 쓰디쓴 패배를 맛봤다.


어제 선거의 결과는 너무나도 분명했다. 개표가 시작된 후 문재인은 한 번도 박근혜의 득표수를 추월하지 못했다. 박근혜 당선자는 첫 과반을 기록했고, 헌정 이래 최초의 여성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얻어 냈다. 그리고 득표의 비율은 거의 분국이 요망될 정도로 반반으로 나뉘었다. 골수지지자들을 제외하면, 모두 차악을 고르는 심정으로 투표를 했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 참여한 이들은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각 당의 목소리를 낼 뿐이었다.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나 잘해 온 전력이 없고 앞으로도 잘할 것을 기대하기 힘듦에도 사람들은, 나는 그런 마음으로 표를 던졌다. 결과는 '왕정복고'다. 나는 정권교체를 바라던 사람으로서 이 결과의 책임에 있어서 큰 비중을 민주당과 그 추종자들에게 돌릴 수 밖에 없다. 노무현은 유시민도 문재인도 아니다. 노무현을 바라는 사람들은 그 자신들이 노무현이 되어야 한다.


투표율이 높으면, 특히 젊은 층이 많이 투표하면 세상이 바뀐다고 해서 투표율 이빠이 땡겨 놨더니 결과가 이 모양이다. 행동하지 않는 20대들을 개새끼로 부르더니, 이제 20대가 행동해버렸으니 누구를 개새끼라 할 것인가? 사실 박근혜가 된다고 세상이 망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문재인이 된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좀 더 힘든 세상이 되거나 좀 덜 힘든 세상이 될 뿐. 그렇지만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힘들지 않은 세상이다. '투표해도 안될 놈은 안되는 세상'을 보여준 이번 선거를 교훈삼아서, 이제 보수양당체제는 끝나야 한다. 정치는 좀 더 쉽고, 내밀하고, 다양해져야 한다. 한국의 '진짜 보수'나 '진짜 진보'는 너무나도 소수다. 아무런 가치도 대변하지 못하며 '보수'나 '진보'를 참칭하는 거대 정당들은 개혁되어야 한다. 앞으로의 5년간 세상이 바뀐다면, 그러한 변화가 있고 나서다. 그리고 밑도 끝도 없이 '그분이 그립습니다'라거나 '다시 새마을운동을 하자'고 외치기 전에 현재 개인의 욕망을 바라보고, 그 욕망들이 다양한 당들을 만든 후에야 그 변화는 가능하지 않을까. 너의 첫 대선과, 나의 30대 첫 대선을 위해서, 변화는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