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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 :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 The Sessions

최고급잉여 2013. 1. 22. 19:40

데카르트는 인간이 정신과 육체, 이 두 가지의 실체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했다. 이 두 실체는 인간이라는 영토 위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극단적으로는 둘 중 하나가 없으면 인간은 더이상 인간으로서 있을 수 없다. 뇌사 상태의, 생명 유지 활동만이 가능한 인간을 '식물인간'이라 부르고, 육체를 빠져 나온 정신은 유령이 되어 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세션 :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은, 육체의 조각난 파편 안에 충만한 정신을 품고 있는 남자 마크(존 호키스 분)이 사랑하는 법을 보여주면서, 스스로를 온전히 바라보는 행위의 중요성과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심신이 멀쩡한 사람들은 오히려 스스로를 정신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잊고 산다. 육체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너무도 간단하고 즉각적이기 때문에, 심지어는 육체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섹스 테라피스트 셰릴(헬렌 헌트)는 마크가 삼십 년간 보지 못했던 그의 육체를 거울에 비춰 보여 주고, 그녀 자신은 유대교 사원에서 알몸이 된 채 성수 안으로 온 몸을 깊숙이 담그고 나서야 스스로의 육체와 정신을 마주 본다. 그리고 모든 것이 분명해지는 그 순간의 감동이 이야말로 이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었던 가장 뚜렷한 메시지였다. 그래서 마크가 가까스로 남아 있는 한 조각의 육체를 사용해서 자신을 전달하는 언어는 정신의 담지체로, 셰릴이 마크에게 제공하는 섹스는 육체의 소리를 전달하는 매체로서 이 영화의 내러티브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소아마비로 얼굴 근육 외에는 움직일 수 없는 마크는 일생의 대부분을 침대 위에서 지내 왔다. 인공 폐가 없으면 세시간 이상을 버틸 수 없는 그에게는 언어만이 자신의 육체와 정신의 소리를 바깥으로 내보낼 수 있는 수단이다. 그래서 그는 한없이 솔직한 말투를 갖고 있다. 하지만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 이상, 지나친 솔직함은 부덕인 탓에 그는 가장 솔직해 질 수 있는 신 앞으로 나아간다. 고해성사를 하기 위해 만난 브랜든 신부(윌리엄 H. 머시 분)에게 털어 놓는 마크의 이야기들과 그것을 대하는 브랜든의 당황하는 모습이 이야기에 웃음의 생기를 부여한다. 마크는 삼십년간 자신의 성기를 본 적이 없지만, 도우미가 그를 씻길 때 가끔 성기가 정액을 토해내곤 하니 아직 그것이 제대로 몸에 붙어 있으며 감각도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낄 뿐이다. 그런 그가 '장애인의 성생활'에 대한 칼럼을 의뢰받고, 봉인해두었던 섹스에 대한 호기심을 직접 체험으로 해소해야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알음알음 섹스 테라피스트인 셰릴과 만나게 되며, 여섯 번의 '세션'을 통해 섹스 수업을 받게 된다. 세션이 진행될수록 마크와 셰릴은 점점 서로에게 이끌림을 느끼게 되고, 그것을 솔직히 표현하는 마크에 비해 남편과 가정이 있는 셰릴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 질 수 없었다. 결국 세션의 횟수를 채우지 못하고 마크와 셰릴은 헤어진다.


나의 언어로 그대를 어루만지리 내 손은 빈 장갑처럼 무기력하니 - 세션 :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 中


눈을 뜨면 하늘만이 있을 뿐이고, 기계의 차가움에 기댈 수 밖에 없으며, 중력만이 마크를 무겁게 내리 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셰릴을 만난 후, 눈을 뜨면 그의 위에 셰릴이 있었고, 그녀의 온기가 있었으며, 그녀의 풍만한 육체가 싫지 않은 무게감으로 그를 누른다. 섹스와 사랑은 별개의 문제일수도 있다. 하지만 <세션 :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은 중증 장애인과 섹스 테라피스트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정신과 육체 모두 인간을 표현하며 완성시키는 도구이며 그 둘을 이용해 사랑을 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과정으로 스스로가 완전한 인간임을 느끼는 순간의 절절한 감동을 효과적으로 비유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