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윤리학
윤리학이란, 그것이 신으로부터의 가르침이든, 세속에 기반한 규범이든간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행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렇기에 만약 인간이 이 세상에 단 한 개체만 존재한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기도 하다. 윤리학은 둘 이상의 인간 사이에 맺는 '관계'를 다루며, 그 관계에서 선함과 악함이란 반드시 절대적으로 이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모순된 단어가 존재하는 이유다. 인간을 선하게 만드는 이유도, 악하게 만드는 이유도 있다. <분노의 윤리학> 속 한 명의 여대생을 둘러싼 네 남자의 악행이 관객 앞에 적나라하게 폭로됐을 때도, 이 네 남자들은 모두 자신의 행위를 필사적으로 변호한다. 여대생과 바람을 피운 대학교수 수택(곽도원 분)의 아내 선화(문소리 분)가, 한자리에서 파국을 맞은 그들에게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네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네 남자는 각자의 이해관계를 들어가며 자신의 순결함을 주장한다. 누군가에게는 끔찍한 폭력으로 촉발될 수 있는 '분노'라는 감정에도 윤리학이 적용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악행은, 극중 사채업자 명록(조진웅 분)의 말마따나 '희노애락' 중 가장 으뜸인 '분노'에 의해 폭로된다. 모든 사건의 시작과 동시에 그들이 서로를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바로 여대생의 구남친인 현수(김태훈 분)의 분노, 살인이었기 때문이다.
<분노의 윤리학> 속 네 남자의 욕망이 투영되는 대상으로 등장하는 여대생 진아(고성희 분)는 여대생 말고도 호스티스, 누군가의 연인, 옆집 여자 등 그녀의 이름 앞에 붙을 다양한 수식의 수만큼 인간관계를 갖고 있다. 영화 안에서 그 관계의 기반이 되는 감정들은 관계마다 제각각일지라도, 결국 분노로 수렴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분노라는 감정은 관계의 자궁으로부터 탄생하지만 그것을 완벽하게 해소하는 방법은 분노한 스스로만이 알고 있다. 분노의 대상이 분노한 사람의 화를 풀어 주려면 '미안하다'고 말하는 수밖에 없다. 하나밖에 없는 방법이지만, 그것이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수많은 흉악범죄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미안하다고 해결될 일이면 경찰이 왜 있겠냐'는 시쳇말이 존재하듯이. 아무런 관계도 없던 사람들이 진아를 중심으로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에서 분노로 서로를 해쳤을 때, 홀연히 등장한 선화가 강제로 그들을 화해시키려 한다. 그들은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화해의 말을 건네지만, 자신들이 사과할 이유, 분노를 풀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네 남자의 화해는 성사되지 못한다. 사람들이 잘못했다고 부르는 것을 스스로 잘못으로 인정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윤리학이지만, 그들은 각자의 윤리학, '분노의 윤리학'을 내세운 탓이다. 결국 답은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성화를 내어서 무엇하나'라는 태평가의 가사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의 끝에서 자수한 현수가 수택을 바라보며 웃고, 수택은 다시 분노한다. 그 순간, 관계의 패자(敗者)는 분명해진다. 분노가 폭발했을 때, 복수가 되고, 복수는 또다른 복수를 낳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미 일어난 일을 분노의 연쇄로 얼룩지게 만들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그 이어지는 관계 안에 있는 사람이다.
영화는 피트 트레비스의 <밴티지 포인트>와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밴티지 포인트>가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점을 반복적으로 제시한 것처럼, <분노의 윤리학>은 영화 속에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시점을 되돌려 그것의 원인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렇게 시점이 역전될 때마다 그 간극을 단순한 점프컷이 아닌, 구십년대 유행했던 <인생극장> 느낌의 영상을 집어 넣어 메우는데, 의도와는 달리 영상이 후져서 그런지 아주 효과적인 방식은 아니었던 것 같다. 대신 호불호가 갈릴 법한 연극 느낌의 연출은 '분노의 윤리학'을 논하기에 적절한 방식이었다. 분노에 의한 복수로 상처입은 네 남자의 피가 한데 섞이는 장면은 지루하게 늘어지기는 했지만 상당히 시적인 충격을 주는 이미지였다.
<분노의 윤리학> 속 네 남자 모두 진아를 살해했지만, 그것은 모두 진아를 사랑해서였다고 말한다. 분노의 유혈이 낭자한 가운데 살아남은 것은 결국 가장 죽고 싶어하던 현수였는데, 그만이 희노애락 중 가장 강하다는 분노라는 감정을 지배하는 무언가에 대해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분노조절장애'라는 정신병명까지 존재하는 현대 사회에서, '분노의 윤리학'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분노를 다스리고 그것을 관계에서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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