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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 뱀파이어 헌터, Abraham Lincoln : Vampire Hunter

최고급잉여 2012. 9. 1. 16:10


제임스 맥어보이와 안젤리나 졸리의 <원티드>를 극장에서 보았던 것이 벌써 4년 전인데, <링컨 : 뱀파이어 헌터>를 보면서 별도의 사전정보 없이도 티무르 베크맘베토브 감독의 작품임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좋게 말하면 감독의 스타일이 확고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전혀 변화하지 않는 감독이라고 할 수 있을 터다. 영화의 꽤나 신박한 설정과 화려한 액션이 두시간 남짓의 러닝타임을 완벽하게 감싸고 있지만, 그 속은 텅텅 비어있다고 해도 미안하지 않을 정도다. 링컨이라는 실존 인물을 끌어다 새로운 이야기를 구성한 것 치고는 개연성이 터무니없고, 내러티브의 진행도 단순함 그 이하의 흐름을 보여 준다. 결국은 '너마저...' 미국의 영광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가 하는 실망감까지 들고 만다. 오락으로 커버하기에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호전적인 성정이 너무 적나라하게 그려지고, 또 뻔한 논리로 정당화된다. 결국 감독은 벤자민 워커의 손에 들린 은도끼로, 감히 건드릴 수 없던 그 링컨의 신화를 박살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긍정적인 결과였냐 하며는 선뜻 그렇다고 답할 수 없다.


링컨의 아버지는 '자유를 얻기 전에 우리는 모두 무언가의 노예이다'라는 말을 아들에게 물려준다. 더불어 '시간은 누구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철학까지. 그 두 개의 잠언들이 이 영화에 정당성이나 개연성 따위를 부여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링컨은 무언가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자유를 얻기 위하여 전쟁을 하고, 시간이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장애 상황이 닥쳐와도 그것을 강행한다. 그리고 여기에 수반되는 모든 살육은 오로지 '우리의' '노예상태의 해방'을 위한 정당한 폭력이다. 전쟁예찬자들의 클리셰는 예외없이 영화의 내러티브를 점령한다. 링컨의 노예해방은 과연 현재 우리의 자유에 있어서 엄청난 공헌을 한 것이지만 그 일이 있고나서 우리는 과연 더이상 무언가의 노예가 아니게 되었을까? 인간이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노예상태에서 벗어나 완벽한 자유를 얻는다는 것은 삶의 시간 중에서는 불가능하다. 다만 '더' 자유로워질 수는 있다. 인간의 역사라는 것이 적자생존-생존하는 것이 적자라는 의미에서-의 논리에 의해 굴러가는 한 살육을 동반한 전쟁 역시 사라질 수 없는 필요악이었기는 했다. 전쟁 이외에 좀더 명민한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한계라고 보면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을 찬양하는 논리로, 충분히 남북전쟁을 반드시 필요했던 것으로 역사에 기록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폭력의 총본산인 전쟁을 정당화하는 방식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역사 속에서는 링컨의 반대편에 노예제도의 소멸을 막고자 하는 자들이 서 있었다면, 영화에서는 그 편에 사람이 아닌 존재, 뱀파이어를 슬쩍 끼워넣어 그들로 하여금 절대악으로서의 포지션을 완성하도록 하는 것이다. <슬레이어즈:TRY>에서 절대다수인 골드 드래곤이 엄청난 힘을 가진 소수의 에이션트 드래곤을 두려워해 그들을 '괴물'로 상정, 말살시키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정상성'의 범위로 문제를 옮긴다. 이러한 '정상성'의 논리에 대한 의문은 영화 <지상 최후의 사나이>에서도 제기되었던 바 있다. 살아있는 것, 즉 정상이라고 생각해온 것들이 소수가 되었을 때 그 존재가 정상성을 지켜낼 수 있을까의 문제다. 피를 탐한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존재를 소멸시키려는 움직임에 저항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는 뱀파이어와, 그러한 타자들과의 공존을 절대 불허해 온 인간의 습성이란 히틀러의 우생학을 연상시킨다. 같은 인간 사이에서도 다른 피부색, 다른 성격같은 것들을 참아 내지 못하는데, 아예 종(種)이 다른 존재들과는 공존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 우리 인간이라는 점을 너무나 당연한 생존본능처럼 포장하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불편한 지점이다. 거기에 링컨이 자유민주주의의 미합중국에는 뱀파이어가 생존할 수 없기에 다른 곳으로 흩어졌다고 일기에 적는 마지막 장면은 소름끼치도록 촌스러웠다. 아직도 우리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에 살고 있는가?


국가란 인간의 광기를 정당화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국가가 주체가 되면 아무리 추악하고 비열하고 잔학한 행위라 해도 사람들은 이를 쉽게 용납한다. -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뻔한 소리는 그만하고, 영화가 액션씬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다는 점 역시도 지적해야만 할 것이다. 말떼 사이에서 격투하는 장면이나 기차씬같은 거대한 스케일의 액션장면을 빼고 나면, 훈련 장면의 지나친 생략은 링컨이 애초에 뱀파이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갑자기 초월적 힘을 구사하는 것처럼 보여 관객을 아연하게 만든다. 게다가 링컨에게 희생 따위의 위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소중한 것을 희생하고 복수의 칼날을 더욱 날카롭게 가는 등의 복수극 클리셰가 오히려 낫다. 위기의 지속이 없기 때문에 에피소드들을 헐겁게 짜깁기 해 놓은 듯한 옴니버스 극의 인상까지 느껴진다. 헨리에 대한 반감이 거의 영화가 종국을 향해 갈 때서야 갑자기 눈녹듯 사라지는 것도 다소 개연성이 떨어진다. 헨리와 애덤이 싸우는 장면은, 뱀파이어끼리 죽일 수는 없다면서 싸우는 것은 되는 건가? 라는 의문을 갖게 하고, 헨리의 존재 자체까지 모순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뱀파이어는 은을 두려워만 하는 것인가? 은에 약한 것인가? 뱀파이어에게 물리면 뱀파이어가 되는 것인가, 죽는 것인가? 뱀파이어는 초월적 힘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는 없는가? '뱀파이어'가 이 영화의 가장 주요한 소재이자 어떻게든 감독의 입맛대로 설정해 쓸 수 있는 존재임에도 마치 <악마의 키스> 속 뱀파이어의 설정처럼 가장 기초적인 합의마저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스토리를 따라가는 내내 신발 속의 돌처럼 거슬리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영화에 하나 남은 장점이자 감독의 장기인 액션씬은 그래도 볼만한 수준이었다. 내러티브의 허술함을 액션씬으로 만회하려는 의지가 조금만 더 보였더라면 꽤나 괜찮은 뱀파이어 영화가 될 뻔 했다는 아쉬움이 든다. 3D로 보지는 않았지만, 3D로 볼만한 씬이 몇개 없을 듯 하다. 하지만 그 몇몇의 장면들이 있어서 그나마 이 영화가 '영화관에서 봐도 좋을' 수준은 되도록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post script. 개인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헨리와 애덤.. 둘 중에 하나 고르라면 헨리..

post script 2.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십구세기 기관차에 기어가 이십칠단 쯤 있는 느낌이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케이티엑스가 관성을 받아도 저정도는 안될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