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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트 이블 : 최후의 심판, Resident Evil : Retribution

최고급잉여 2012. 9. 13. 17:39

최근에 봐왔던, 환상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작품들의 대부분이 영상미에 쏟은 노력에 비해서 관객에게 사소한 내러티브의 요소까지도 납득시키려는 완벽주의자적인 성향을 포기했다고 생각했었다. 그 완벽함이란 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님에도, 감독들은 완벽한 자기세계 구축에의 욕망을 거세하고 금전이나 시간적 한계를 받아들인 것이다. 관객들은 신박한 소재와 화려한 영상의 홍수 속에서 시각적 쾌감을 느낄지언정 받들어 모실만한, 진정한 걸작을 만난지는 너무나 오래되었다. 이 영화는 이런 류의 다른 영화들처럼 한없이 단순한 내러티브로 진행되지만, '마스터피스'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사소한 디테일들을 납득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미 시리즈가 5개나 나왔으니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은 감독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라고 생각하기에 별점을 가득 안겨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 리들리 스콧의, 그 프로메테우스도 그저 그런 SF에 머무르지 않았나.


아이맥스 3D로 관람했는데, 3D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것이 분명하게 표가 난다. 영화관람의 즐거움을 배가시키기 위해 개발된 현존하는 모든 기술을 다 갖다 적용했다면 이 영화는 지금보다 더한, 최대치의 쾌감을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아이맥스 화면에 4DX 의자라든가.. 과감하게도 백분이 채 안되는 영화의 초반 십분 정도를 3D의 영상미 자랑에 투자했다는 것이 다소 지루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이 영화를 관람하려 했던 의도를 떠올려 봤을때 충분히 가능한 연출이었다고 본다. 시리즈 요약에 어느정도의 시간을 할애한 것도 감사하고 싶기까지 한 성의였다. 유리의 질감을 그대로 살린 스크린에 떠 오는 밀라 요보비치의 자기소개 장면은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를 모두 보지 않았어도 관객들에게 만족스러운 개연성을 확보한 상태로 내러티브를 따라갈 수 있도록 한 배려와도 같았다.


영화는 눈을 돌릴 틈 따위는 주지도 않은 채 엄청난 압도감으로 진행된다. 강대국들의 군비경쟁이 과열되고 살인기술은 극도의 발전을 이룩하고 있는 때, 그 시대가 낳은 괴물들이 결국 인간을 공격한다는 스토리에 모종의 불안을 느끼는 반응은 SF가 막 발전하던 시기의 문제의식일 뿐이다. 그러한 철학은 이제 지루하기까지 하다. 관객들이 만약 그런 철지난 불안을 느낀다 할지라도, 인간의 영역 안에서 변종이지만 구원의 존재가 탄생하여 언데드들을 때려잡는다는 설정으로 안심을 시켜주는 것이다. 이 영화는 그야말로 쾌감으로 시작하여 쾌감으로 끝을 맺는 영화다. 다크나이트같은 수퍼히어로물이 어설픈 철학을 들이댈 때 이렇게 본능에 충실한 영화들이 존재감을 다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아쉬웠던 점은, 언데드 기생충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것을 혈관에 흘려 넣었을 때 그야말로 천하무적으로 죽지도 않는 능력을 얻는다면, 그것을 보유한 쪽에서 왜 그것을 이용해서 간단히 인류를 전멸시키려 하지 않냐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계산된 허점이었는지, 최후의 심판을 기대하고 스크린 앞에 앉은 관객에게 속편의 여지라는, 반전이라면 아주 강력한 반전을 보여 준다. 내가 던진 질문의 답이 속편에서 나올지는 미지수지만, 이 감독이라면 이러한 질문도 계산한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까지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