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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브 파이, Life of Pi

최고급잉여 2013. 1. 3. 20:26

파이의 인생은 마치 파우스트의 그것과도 같았다. 진리는, 그리고 인생은 그의 별명 '파이'처럼 끝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신이며 영혼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종교로부터 배우고, 그것을 믿는 파이에게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동물원 안의 동물들조차도 그와 진짜 친구가 되어주지 않는 것이다. 뱅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친구가 되기 위해 우리 문을 열고 고기를 주려 했다가 아버지에게 꾸중을 듣고, 그 벌로 살아있는 영양이 잔인하게 잡아먹히는 모습을 눈 앞에서 보아야만 했던 파이는 그때부터 무엇에 삶의 의미를 두어야 할 지 혼란스러워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그는 아만디라는 소녀를 만나게 되고, 그녀에게 반한 파이는 아만디를 향한 사랑으로부터 살아갈 이유를 찾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동물원에 시의회의 지원이 끊기게 되자 캐나다로 이민을 가야만 할 처지에 놓이게 된 파이는 그렇게 아만디와 작별하고 다시 삶의 이유를 둘 곳을 잃는다. 파이의 가족들과 동물들을 태우고 캐나다로 가던 배가 마리아나 해구를 지나던 도중 심한 폭풍을 만나 침몰하게 되며 그는 구명보트에 혼자 남게 된다. 가족을 모두 잃고 망망대해에 홀로 남은 파이의 방주에는 하이에나와 얼룩말, 오랑우탄과 뱅갈 호랑이 '리처드 파커'까지 같이 타고 있었으나 그들은 파이의 길동무가 되어주지 못하고 굶주림에 서로를 물어 뜯다가 죽고 만다. 이제 구명보트에 남은 것은 오로지 파이와 리처드 파커 뿐. 하지만 리처드 파커 역시 숨길 수 없는 야수의 본능으로 파이를 위협한다. 그래서 파이는 끝도 보이지 않는 바다 위에서는 대자연의 공격을, 구명보트 위에서는 리처드 파커의 이빨과 발톱을 견뎌내야 하는 신세가 된다. 육체의 피로 뿐만 아니라 바뀌지 않는 일상에 대한 권태와 혼자 남았다는 고독감까지 파이를 무겁게 짓누르고, 그는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하나하나 소거해가는 신에게 차라리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울부짖는다. 하지만 파이의 신은, 그러니까 자연은 파이가 그렇게 쉽게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리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 리처드 파커와 함께 지내며 그와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방법들을 궁리하고 실행해 나가는 와중에 파이는 인생의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결국 해안에 표류해 살아남은 파이를 뒤로 한 채, 리처드 파커는 밀림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파이의 시야로부터 모습을 감춘다. 파이는 야속함에 눈물을 흘렸지만, 그것이 리처드 파커와 파이에게 최선은 아니었을까.


<라이프 오브 파이> 속 대자연의 거대함과 복잡함, 그리고 그것들의 진리를 독점하고 있는 신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영상미로 빛나는 순간순간은 테렌스 맬릭의 <트리 오브 라이프>를 연상케 했다. 다만 <트리 오브 라이프>에서 '신의 위대함'을 지나치게 강조한 탓에 느껴졌던 거부감이 <라이프 오브 파이>에는 없었다. 파이는 내내 신의 이름을 외치기는 하지만 이는 진짜 신이라는 존재를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파이 자신의 믿음을 향한 부르짖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트리 오브 라이프>에서는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영상들을 사용, 관객들의 이입보다는 모종의 소외효과를 노렸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덮쳐 오는 대자연 안에 파이와 리처드 파커만이 오롯이 들어가 있었고 미약하게나마 그 자연을 움직이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사실 따져보면 비현실적인 이야기일지라도 현실적인 영역에서의 감화가 가능하도록 했다.


모두의 삶은 파이와 리처드 파커가 마주한 태평양처럼 '미지와의 조우'의 연속이다. 가끔은 몸서리치게 외로울 때도, 그렇지만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때도 있다. 비상식량이 폭우에 다 떠내려가더라도 날치떼가 몰려와 식량을 자처하기도 한다. 하늘이 열리고 무시무시한 번개가 내려칠 때도 있지만 밤바다를 수놓은 야광해파리떼의 유영같은 장관을 볼 때도 있는 것이다. 파이의 삶은 특별하지만, 또 특별하지 않았다. 파이가 살아갈 이유로 삼은 것들이 그의 삶을 하나둘 떠나갈 때마다, 그는 그것들에게 부러 작별인사를 꺼내지 않는다. 영원한 작별도, 영원한 만남도 없는 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파이는 결국 리처드 파커가 그가 생각하는 형태의 친구로 남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리처드 파커에게도 영혼이 있다는 믿음의 끈만은 놓지 않는다. 삶 속에서 그러한 의외의 사실들을 수도 없이 만날테지만, 양보와 수용의 과정을 겪으며 파이의, 우리의 외연은 확장되고 내면은 깊어지며 믿음이라는 중심은 점점 흔들리지 않게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래서 이 영화는 엔딩크레딧부터가 시작이다.


물질의 고독에 짓눌려, 신은 대양과 바닷물로 울었다. 넓은 바다의 매혹적인 부름, 그 안에 영원히 잠기고 싶다는 유혹은 그래서 생겨나는 것이다. 마치 그것이 신에게로 돌아가는 길인 것처럼..

하늘이나 바닷가를 바라 보면서 감동하여 눈물을 흘려 보지 않은 자는 두려운 신성의 곁에 가 보지 않은 자이다. 그 곳에서 고독은 너무나 커서, 그보다 더 큰 고독을 불러낸다. - 『눈물과 성인들』, 에밀 시오랑


post script. IMAX 3D와 4DX 3D로 두 번 관람했는데, 4DX 기술에는 다소 실망을 했다.. (굳이 4DX로 관람하겠다면 네번째 줄 정도에서 보는 것이 최선인 듯.) 그렇지만 IMAX 3D로는 충분히 볼 가치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차치하고 영상미만으로도 눈물이 나는 영화였음.


post script 2. 4DX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들어오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첨언하자면, 4DX 기술 자체가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의자가 앞뒤좌우로 운동하고(디테일한 움직임들은 없음), 물이나 향기가 간간히 얼굴에 끼얹히는데, 물은 좀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고.. 뭔가 위생적으로 찜찜한 느낌이 들었음(위생적인 면에 있어서는 굉장히 둔한 인간임). 향은 영화 초반에 처음 나오는데, 그 동물원 냄새 아시죠 똥냄새랑 풀냄새가 묘하게 섞인 그 냄새. 그래서 그거 재현한게 신기하다 싶었는데 <라이프 오브 파이> 속에서 향 효과는 딱 저 냄새 하나로 쭉 갑니다. 그러니 그냥 IMAX 3D로 보심이. 제 첫 4DX 영화였는데 앞으로도 4DX는 왠만하면 안 볼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