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의 춤, Dracula: Pages From A Virgin's Diary
무성영화는 다른 영화들보다 특히 더, 은막 위에 써내려가는 시(詩)다. 화면과 화면 사이의 행간을 읽는 독해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함축되고 과장된 무성영화의 한 컷 한 컷은 분명 시각적 쾌감을 선사하기는 하지만, 그 장면들에 왜 그러한 함축과 과장이 필요했는지를 생각해보면, 단순히 눈으로만 보아 넘기기는 아쉽다. 줄곧 이와 같은 무성영화의 방식으로 영화를 찍어 온 가이 매딘 감독의 뱀파이어 영화, <드라큘라의 춤>에는 무척 새로우면서도 주효한 시도가 있었으니, 바로 춤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의 비언어적 예술 중 하나인 춤은 무용수의 모든 몸짓에 의미를 담는다는 점에서 무성영화의 모든 장면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무성영화에 춤을 접목시킨 감독의 시도는 상당한 예술적 시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드라큘라의 춤> 속 뱀파이어는 인간이 갖고 있는 욕망의 현신이다. 흑과 백만 존재하던 화면 위로 처녀의 피가 흐를 때, 뱀파이어는 눈을 뜬다.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다'고 했던가. 욕망이 섞여든 피는 계속해서 뱀파이어를 부르고, 결국 그 자신이 욕망의 현신으로 화(化)해 버린다. '죽지 않는' 뱀파이어는, 꾹꾹 눌러도 다시 머리를 내미는 욕망과 너무나도 닮아 있는 존재였다. 한편, 결국 뱀파이어를 퇴치한 반 헬싱 박사 일행은 또다른 피해자를 찾아 나서고, 뱀파이어 굴에 들어 갔다가 만신창이가 된 남자를 통해 뱀파이어의 행방을 추적해 낸다. 남자의 약혼녀는 완쾌된 듯 보이는 약혼자와 육체적 결합을 시도하지만, 그 욕망의 시발점에서 눈을 뜬 뱀파이어의 또다른 표적이 되어 계속적으로 유혹을 당하게 된다. 뱀파이어의 관에는 사라진 영국 돈 무더기가 나오고, 그를 찌르면 금화들이 쏟아지는 등, 뱀파이어라는 존재가 영화 안에서 수많은 욕망의 담지체임을 은유하는 장면들은 가히 탁월했다. 아직 욕망에게 정신까지는 잠식당하지 않은 상태의 약혼녀를 구하기 위해 나선 반 헬싱 박사 일행은 우여곡절 끝에 뱀파이어의 심장에 말뚝을 박아 넣는다. 하지만 뱀파이어는 정말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일까? 우리의 욕망에, 풀리지 않을 단단한 고삐가 채워진 것일까? 감독은 결말을 통해 뱀파이어라는 존재가 소멸했다는 확언을 하지 않는다. 한 번 열린 문은, 쉬이 닫히지 않는다.
문학사에서 가장 탐미적인 캐릭터 중 하나인 뱀파이어는, <드라큘라의 춤> 속에서 특이하게도 동양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서양인에 비해 선(線)이 두드러지는 외모를 하고 있는 동양인 뱀파이어가, 온몸이 자아내는 선으로 이야기하는 발레 위주의 춤으로 대사를 대신하는 모습은 이 영화를 세평처럼 '가장 아름다운 뱀파이어 영화'로 만들기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