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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가족

최고급잉여 2013. 5. 7. 18:57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인간이란 참 가련한 존재다. 혼자서는 살 수 없어서 친구며 가족같은 울타리를 만들었지만, 그 울타리는 이내 견고한 벽이 되어 개인을 속박하기도 한다. 어쩔 수 없이 '양날의 칼'을 쥐고 살아야만 하는 인간으로서의 삶은 그래서 애잔하다. 한편, 가족은 그 자체로 '기계장치의 신'이 되기도 한다. <고령화가족>의 엄마(윤여정 분)가 입버릇처럼 '그래도 가족'을 달고 사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가족은 개인의 울타리어야 한다는 모종의 도덕관념이 이미 뿌리깊게 학습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은 인간이 발명해낸 원죄일지도 모르겠다.


<고령화가족>은 모두에게 비슷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가족이야기'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이야기의 전개과정과 결말 따위를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어떤 막장 설정이 나오더라도 마찬가지다. 마흔이 넘어도 백수로 뒹굴거리는 두 아들, 두 번의 돌싱경력과 중학생 자식이 있는 딸, 그럼에도 아무 말 없이 그들을 품고 사는 어머니에 출생의 비밀까지 <고령화가족>은 갖은 막장 클리셰를 현란하게 버무려 놓았다. 영화가 중반으로 달려갈 때까지 우리는 이 가련한 엄마에게 감정이입을 한다. 한심한 자식새끼들을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매끼 삼겹살에 고봉밥을 먹여가며 데리고 사는 엄마를 불쌍하게 여기면서도 그녀의 행동을 당연하게 여긴다. '가족이니까'. 하지만 그들은 피로 섞여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이따위 콩가루 동거를 해체할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었던 엄마는, 그것을 꺼내놓지 않았을까? 처음 '가족'이라는 것을 발명해낸, 조상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으리라. <고령화가족>의 주인공들은 모두 가족을 만들고 싶어한다. 두 번을 이혼하고도 또다른 가정을 만들고 싶어하는 미연(공효진 분), 바람핀 아내와 이혼만은 해주지 않으려는 인모(박해일 분), 슬슬 새출발을 해야겠다며 껄렁거리지만 동네 미용실 수자씨(예지원 분)에게 진심을 바치는 한모(윤제문 분) 모두가 가족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우리 인간의 모습이다. 세상이 말하는 어엿한 가족의 모습이 아닐지라도, 그들은 서로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단단히 묶고자 한다. 삭막한 콘크리트 벽에 배죽 삐져나온 하얀 꽃을 함께 바라보며 끌어안을 수 있는, 그런 모습으로 서로에게 있어주고자 하는 것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신지가 제3신동경시를 빠져나갈 때 차마 전차에 오르지 못하고, 미사토 역시 그를 보내지 못한 것처럼.


이 막장의 막장을 더한 가족이야기는 너무 뻔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런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는다. 나와 같은 존재의 확인으로,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한다. 영원히 외로울 수 밖에 없는 인간으로서, 영화 곳곳에 묻어나는 자전적인 느낌에 공감한다. <고령화가족>은 이렇게 가련한 존재, 인간이 만들어낸 '가족'의 진정한 의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핏줄의 이어짐이 가진 단단함이 정(情)의 끈보다 반드시 강하지만은 않다. 가족이란, 애초에 남남이 만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던가.